나는 인간의 마음을 오래도록 수학적 공식처럼 이해하려 했다. 세로토닌은 안정의 파동을 만들고, 도파민은 욕망의 불꽃을 쏘아 올린다. 우울과 쾌감은 각각 일정한 패턴 속에서 예측되고, 약물로 보충 가능한 계산적 함수처럼 느껴졌다. 인간은 결국 분자와 회로로 이루어진 기계에 가까웠고, 나는 그 기계의 설계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였다.
그러나 옥시토신은 달랐다. 그것은 단순히 ‘행복 호르몬’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고, 너무도 신비로웠다. 옥시토신은 관계적 증폭자다. 신뢰할 수 있는 타자와 함께 있을 때, 그 호르몬은 애착과 안도감을 밀물처럼 밀어 올린다.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숨을 고르는 순간, 연인이 포옹 속에서 느끼는 고요한 안정감, 인간과 인간 사이에 묘하게 흐르는 친밀함—그 모든 순간에 옥시토신은 은밀히 작용한다.
하지만 그 힘은 언제나 부드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적대적 환경에서는 옥시토신이 불안과 경계심을 증폭시키고, 마음을 날카롭게 세운다. 사랑과 불신, 친밀과 거리, 그 모든 극과 극이 한 호르몬 속에서 교차한다. 옥시토신은 양날의 검, 인간의 뇌 속에 신이 심어놓은 신비로운 이중성이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인간의 마음을 일정한 리듬으로 춤추게 한다면, 옥시토신은 무대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 순간의 빛으로 교향곡을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소용돌이치는 긴장 속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이제 단순히 뇌 속의 화학적 균형으로 환원될 수 없다.
뇌의 다른 호르몬들을 숫자와 방정식으로 바라보던 나조차, 옥시토신만큼은 수학적 모델로 완전히 환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신비를 담고 있고, 화학적 반응을 넘어 영적인 경험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신성이 바로 이 호르몬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사랑은 용인된 정신병’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인간의 뇌는 사회적 신뢰와 애착에 과도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옥시토신은 감정과 관계를 극단적으로 증폭시키고, 사랑에 대한 집착이나 집단적 몰입을 심화시킬 수 있다. 사랑이 있는 순간, 뇌는 화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전히 사로잡히며, 비합리적 선택이나 과도한 몰입마저 정상적 행동처럼 느끼게 만든다.
즉, 정신적으로 균형이 깨질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옥시토신은 그 몰입과 애착을 용인하고, 심지어 강화한다. 사랑이라는 관계적 환상이 인간의 이성을 일시적으로 제어하게 만들며, 그 결과 우리는 때때로 ‘정신병적’이라 불릴 수 있는 상태 속에서도 서로를 받아들이고 연결된다.
이제 나는 인간을 단순한 호르몬 기계라고만 부르기 어렵다. 분명 우리는 기계이지만, 동시에 그 기계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의 어떤 선물이 숨어 있다. 옥시토신은 그 경계선에 있다. 그것은 과학으로 밝혀낼 수 있지만, 다 밝히고 난 뒤에도 여전히 ‘신비롭다’라는 감정을 남기는, 그런 호르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