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 사고와 불행의 구조

by 신성규

인간은 평면적으로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입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능력은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우리는 눈앞의 사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이 속한 맥락, 과거의 원인, 미래의 결과까지 동시에 떠올린다. 한 가지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수십, 수백 가지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 모든 가능성 속에서 스스로를 위치시킨다.


그러나 이 능력은 언제나 축복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고의 차원을 끝없이 늘려가며 그 안에 파묻힌다. 그들은 어떤 일을 단순히 경험하지 않는다. 경험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었던 것들’과 함께 다가온다. 한 가지 선택을 하면, 그 순간 머릿속에서는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길이 동시에 열린다. 그는 지금의 현실을 살면서도, 동시에 살아보지 못한 현실들을 짊어지고 간다.


이런 사고는 불안의 뿌리가 된다. 단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눈앞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하지만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에게 오늘은 결코 오늘만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며, 내일의 전조이며, 동시에 무수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 결과 그는 현실에 온전히 발 딛지 못한다. 눈앞의 세계는 언제나 여러 겹의 그림자에 덮여 있고, 마음은 늘 불안과 후회, 예감과 공포에 흔들린다.


그래서 지능이 높은 사람은 흔히 불행하다. 그는 삶을 하나의 층위에서만 경험하지 않고, 겹겹의 차원에서 동시에 경험한다. 단순히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도, 그는 그 사랑이 언젠가 식을 수 있음을, 이 감정이 사회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과거의 경험들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함께 생각한다. 기쁨 속에서도 그는 비극을 본다. 희망 속에서도 그는 좌절을 감지한다. 그의 사고는 넓어질수록, 행복을 갉아먹는다.


반대로 단순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훨씬 가볍게 산다. 그는 한 번의 웃음을 웃음으로, 한 번의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마음은 불필요한 차원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은 단순함 속에서 솟아나고, 불행은 지나친 입체성 속에서 자라난다.


불교가 강조하는 단순성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라’는 가르침은, 인간의 입체적 사고가 만들어내는 불필요한 불행을 거두어내려는 시도다.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의 불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죽을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기에, 삶을 단순한 현재로만 경험하지 못한다. 죽음을 향한 투영이 모든 현재를 잠식하기 때문이다. 지능이 높은 사람은 이 투영을 더 강하게, 더 자주 느낀다.


결국 문제는 사고의 능력이 아니라, 그 능력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불행을 인식하고 나를 현재로 되돌리는 능력 또한 인간만이 가진 힘이다. 단순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현재에 머물지만,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의식적인 훈련과 성찰을 통해서만 현재에 도달한다.


지능이 높은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세상을 너무 많이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행을 넘어서는 길 역시, 그가 가진 ‘너무 많이 보는 눈’을 스스로 제어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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