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다큐멘터리 속 사람들의 언행을 들여다보면, 뜻밖의 놀라움이 찾아온다. 배우지 못한 농부, 가난에 허덕이던 상인, 혹은 그저 길을 지나던 이들마저 한 마디 말 속에 묵직한 무게와 단단한 격식을 담고 있었다. 그들의 언어는 투박했으되 거칠지 않았고, 간결했으되 가볍지 않았다. 그 말투 안에는 살아온 세월이 고여 있었고, 말과 말 사이에는 긴 호흡이 있었다.
오늘의 언어가 즉각적 반응과 소비를 위해 재단된다면, 과거의 언어는 절제와 기다림 속에서 빚어졌다. 말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격의 일부였고, 공동체와의 약속이었으며, 동시에 자기 수양의 결과였다. 말은 곧 품격이었고, 품격 없는 언어는 곧 사람됨의 부족으로 여겨졌다.
언어의 깊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수많은 정보를 몇 초 만에 흡수하고 흘려보낼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럴 수 없었다. 사람들은 느리게 읽고 오래 기억했으며, 한마디 속담이나 한문 구절을 수십 년 곱씹으며 살았다. 그런 사유의 습관이 언어에 스며들어, 짧은 대화조차 하나의 문학처럼 다가오게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언어는 속도를 요구받는다. SNS와 영상 속 문장은 짧고, 직접적이고, 자극적이어야 한다. 품격 있는 완곡어 대신 직설과 패러디가 웃음을 이끌어내고, 깊이 있는 숙고 대신 반짝이는 유행어가 빠르게 소통을 주도한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이자, 민주적 자유가 확장된 또 다른 시민성의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아쉽다. 말이 곧 품격이던 시절, 깊이 있는 사유가 말 속에서 문득 드러나던 시절의 언어가 그립다. 그것은 단순히 ‘옛날이 좋았다’는 향수가 아니다. 언어의 격식과 깊이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질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사고하는 방식이며, 그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대접하는가의 척도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언어와 자극적인 언어를 넘어, 다시금 깊이와 품격을 회복하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느리고 단단한 말이, 우리를 다시 인간답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