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과 신음

by 신성규

인간의 감정은 언제 언어가 되는가.

아니, 그보다 먼저 묻고 싶다 —

감정은 정말로 언어가 되어야만 존재하는가.


예술은 그 질문의 변두리에서 시작된다.

감정이 아직 이름을 얻기 전,

몸이 먼저 떨리고, 숨이 끊기며, 눈물이 흘러내리는 그 순간.

그 무의미의 폭발 속에서,

우리는 언어보다 오래된 감정의 진동을 경험한다.


울음은 그 원형이다.

그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발성이다.

의미 이전의 호흡, 이해 이전의 감각.

울음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무엇을 느끼는가’로 존재한다.

그때 우리는 아직 이름이 없고,

그저 세계와 하나로 울고 있을 뿐이다.


예술가가 추구하는 진실은 바로 그 지점이다.

의미가 만들어지기 전의 세계,

즉 감정이 아직 언어로 번역되지 않은 상태.

그곳에서 예술은 언어를 초월하고,

감정은 이성의 껍질을 벗는다.


신음 역시 같은 계열의 언어다.

그건 쾌락의 상징이 아니라,

감정이 터져 나오는 ‘몸의 말’이다.

그 순간 인간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 무방비함 속에서,

가장 진실한 예술적 표현이 발생한다.


울음과 신음은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하나는 슬픔으로, 하나는 쾌락으로 움직이지만

둘 다 인간이 ‘자아의 경계’를 잠시 잃는 순간이다.

그때 우리는 존재가 아니라 흐름이 된다.

사유하는 자가 아니라, 단지 느끼는 자로 돌아간다.


언어는 감정을 질서화한다.

그러나 모든 질서에는 손실이 따른다.

언어가 감정을 설명하는 순간,

그 감정은 이미 식어버린다.

그래서 예술가는 끝없이 그 이전의 상태,

말해지기 전의 감정, 번역되기 전의 진동을 탐색한다.


그것이 예술의 근원이다.

예술은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이 언어가 되기 전의 세계를 포착하는 행위다.

그곳에는 의미가 없고, 오직 진동과 감각만이 존재한다.


나는 그 세계를 믿는다.

그곳에서 울음은 음악이 되고,

신음은 리듬이 된다.

몸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이 된다.

그렇게 감정은 언어가 되기 전의 순수한 형태로

예술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keyword
팔로워 137
작가의 이전글죽음과 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