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자유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제도에 속하지 않는 자유,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는 자유,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선 존재로서의 자유.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자유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책임과의 변증법 속에서만 성립한다는 것을.
헤겔이 말했듯, 모든 개념은 그 자체만으로는 불완전하며
반대항과의 긴장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무구속 상태 그 자체가 자유인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얽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다.
나는 갈수록 책임의 무게가 없는 자유가
공허와 닮아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자유는 아무것도 잃지 않지만,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
약속하지 않고, 남기지 않고, 증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한 가능성이지만,
실현되지 않은 채 흩어지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인간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상태에서 영원히 살 수 없다.
삶의 질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하느냐에서 생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묻기 시작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자유를 쥐고 있었는가?”
현대 사회는 개인의 해방을 찬미해왔다.
각자도생이라는 신념, 자기완결적 주체라는 신화,
자유시장의 인간형.
그러나 개인주의의 극점에서 인간은
강해지기보다 날카로워지고,
독립적이기보다 고립된다.
개인은 독립을 얻은 대신
돌봄의 구조를 잃었고,
자기 결정권을 얻은 대신
공동 운명의 경험을 잃었다.
독립은 자기 강요와 자기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끝없는 자가 관리 지옥을 만든다.
자기 세계에 갇힌 고독한 지성은
세계를 통찰할 수 있으나,
세계를 감당하지 못한다.
나는 그 단단한 외피의 내부에서
붕괴 대신 공허를 경험했다.
고독은 날 갈기갈기 찢지 않았지만,
서서히 내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관계는 인간의 위험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구조다.
결혼을 떠올리면 예전 나는 구속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나는 결혼을
사적 계약이자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로 본다.
계약은 구속이지만,
자발적 구속은 곧 자기 확장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가능성을 묶어 확실한 미래로 전환한다.
자유로운 두 존재가 서로에게 책임을 주는 것.
그것이 결혼이다.
타인은 나를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타인은 나를 인간으로 만든다.
나를 규정해주고, 나를 요구하고, 나를 넘게 만든다.
결혼은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책임을 공유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그리고 그 의지야말로 인간을 단단히 현실에 정박시키는 닻이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의 절정은 자유가 아니다.
사랑의 절정은 서로를 선택하고, 서로에게 빚지는 것이다.
나는 자유를 오래 지녔다.
그 자유는 나를 성장시켰고, 나를 지키고, 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자유 그 이후의 세계를 보고 있다.
자유는 도망치지 않게 해주지만,
책임은 머무르게 한다.
자유는 나를 독립된 존재로 만들지만,
책임은 나를 세계 속 실재로 자리 잡게 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홀로 선 자유인이 아니라
함께 짊어지는 존재가 되고 싶다.
지금의 나는 도망치지 않는 자유가 아니라
머무는 책임을 원한다.
혼자가 아닌 연결 속에서
나를 더 크고 따뜻하게 확장하기 위해.
그것이 내가 택한 새로운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