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제도는 원래 주주의 몫을 강화하는 장치였다.
회사와 주주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철학 아래,
잉여가치를 주주와 나누고 기업가치를 장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미국에서 자사주 매입이 ‘주주환원’으로 기능한 이유는 단순하다.
매입한 주식을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즉, 시장에 떠도는 지분을 줄이고,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명확한 제도적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 제도를 기묘하게 사용해왔다.
자사주는 소각되지 않았고, 기업의 곳간 어딘가에서 대기했다.
그것은 ‘주가 부양’이 아니라
잠재적 지배력 강화, 경영권 우회 방어,
이사회가 주주보다 우위에 있다는 암묵적 선언이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소유와 책임의 결합이다.
하지만 한국형 자본주의는 오래도록
소유 없는 지배, 책임 없는 권력이라는 회색지대를 허용해왔다.
자사주는 기업을 위한 것도, 주주를 위한 것도 아닌
지배구조 방패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지금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법은,
자본시장의 정당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그럼에도 일부 경영자들은 말한다.
“앞으로 기업이 자사주를 안 사게 되어 주주가 손해 본다.”
정말 그럴까?
한국 기업은 자사주를 사서 소각한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창고에 쌓아두고,
필요하면 EB로, 혹은 M&A 보조수단으로,
혹은 총수일가 지분 방어용으로 썼다.
주주가치를 올리기보다
‘내 자리 지키기’에 쓰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쯤 되면 질문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정말 주주와 함께 가는가?
아니면 주주가 자본을 제공하는 순간 이미 배제되는가?
그렇다면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래도 자유시장인데… 규제하면 안 되지 않나?”
하지만 자유는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
자유로운 자본시장은 투명한 시장일 때만 유지된다.
책임 없는 자유는 특권이고,
책임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규제는
오히려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한다.
한국에서 자사주는 ‘시장 메커니즘의 상징’이 아니라
‘권력의 공학’이었다.
주주의 몫이 아니라
지배주주의 무기였다.
그래서 지금의 개혁은 단지 금융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주주와 기업, 소수와 다수, 권력과 시장 간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싸움이다.
만약 자사주 매입이 진짜 주주환원이라면
기업들은 당연히 소각을 지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반응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동안 자사주가 누구를 위해 존재했는지가 드러난다.
민주주의가 무조건 선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합의와 타협이 때로는 정의를 늦춘다.
그러나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장기적으로
권력을 투명하게 만들고,
특권을 제어하며,
시장과 사회가 함께 가는 방향을 찾는다.
자사주 논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나라는 자본이 지배하는가,
아니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가?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본시장과 민주주의 모두를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