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전문성은 좁고 깊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정반대의 진실을 본다. 한 분야에 진짜로 깊이 내려가 본 사람은, 그 이후에는 새로운 영역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표면은 달라도, 인간이 만든 모든 체계와 세계는 결국 일정한 구조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통달이란 지식의 양을 많이 쌓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구조를 이해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구조를 이해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나’보다 먼저 ‘왜 이렇게 흘러가는가’를 본다. 그 질문이 자리 잡는 순간, 분야가 달라져도 사고의 원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예술이든 공학이든, 금융이든 철학이든, 심지어 인간관계든—모두가 어떤 논리적 패턴과 내부 질서를 따라 움직인다. 통달은 그 질서를 읽는 눈을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배울 때 마치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한 번 깊이 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르게 움직인다. 처음 보는 문제조차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즉시 “이건 그때 파악했던 구조와 닮았다”는 패턴을 발견한다. 전체의 윤곽을 단번에 잡고, 핵심만 뽑아서 적용한다. 그래서 남들은 몇 달, 몇 년을 헤매는 길도 훨씬 빠르게 통과해버린다.
나는 ‘통달’이라는 단어가 어떤 종류의 권위를 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겸손한 통찰에 가깝다. 세상은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아주 비슷한 원리들이 반복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얻는 관점이다. 구조를 아는 사람에게 세상은 무수한 분야의 나열이 아니라, 거대한 연결망처럼 보인다. 하나를 정확히 이해하면, 열이 자연스럽게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통달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이런 특유의 침착함을 갖는다. 문제를 복잡하게 보지 않고, 구조를 먼저 찾고, 변하지 않는 핵심부터 붙잡는다. 난관이 와도 “이건 분명히 구조가 있다”는 확신을 잃지 않는다. 그 확신이 새로운 분야에서도 놀라운 속도로 성과를 쌓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한 분야를 깊이 파는 경험이 삶 전체를 바꾼다고 믿는다. 그것은 특정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작동 방식과 인간의 사고 구조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를 아는 사람은 결국 무엇을 하든 일정 수준 이상을 해낼 수 있다. 그 능력은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는 힘’이 아니라, 본질을 ‘통합하는 힘’에서 나온다.
나에게 통달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의미를 넘어서 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만드는 과정이다. 무엇을 하든 길을 잃지 않는 사람, 어떤 복잡함을 만나도 구조를 찾아내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새로운 일은 두려움이 아니라, 이미 한번 열린 세계의 또 다른 변주일 뿐이다.
결국, 한 분야에 통달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본질을 볼 수 있는 상태, 즉 세계를 구조로 이해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어디에 옮겨 심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