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지식은 조용한 것이었다. 그것은 경쟁의 도구도, 증명의 수단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책을 읽었고, 누군가는 언어를 익혔으며, 누군가는 질문을 품은 채 오래 생각했다. 그 시간은 외부의 보상과 직접 연결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인간을 다른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과거에 지식은 희소했다. 책은 제한된 계층의 소유물이었고, 언어를 다룰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권력의 주변에 설 수 있었다. 알 수 있는 자와 알 수 없는 자의 간극은 곧 사회적 위계였다. 지식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권력의 얼굴을 띠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태도에 가까웠다.
지금은 다르다. 지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클릭 몇 번이면 대학 강의가 펼쳐지고, 전문 서적의 요약이 흘러다닌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지식 위에 서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이상 지식을 갈망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지식 그 자체를 욕망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지식은 ‘그 자체로’ 가치 있지 않다. 지식은 반드시 다른 무엇으로 번역되어야만 의미를 가진다. 학위, 자격증, 인증서, 직함. 다시 말해 지식은 권력으로 전환될 때만 사회적 언어를 얻는다. 이 전환이 불가능한 지식은 공기처럼 흩어지고, 평가되지 않는다.
이 구조는 인간의 학습 동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세계를 어떻게 확장하는가’를. 대신 이렇게 질문한다. ‘이것이 나의 지위를 얼마나 올려주는가’. 지식은 사유의 재료가 아니라, 스펙의 부속품이 되었다.
그래서 깊이 아는 사람보다 증명된 사람이 선택된다. 사유하는 인간보다 제도에 등록된 인간이 안정적이다. 지식은 삶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시스템을 통과하기 위한 티켓이 된다.
이 변화는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바꾸었다. 우리는 배움을 통해 변형되기보다, 배움을 통해 안전해지기를 원한다. 모르는 상태에서 흔들리기보다, 정답 안에 머무는 편을 택한다. 질문은 불편하고, 사유는 위험하다. 대신 증명 가능한 지식은 우리를 보호해 준다.
그러나 그렇게 보호받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잃어간다. 생각하는 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지식이 권력으로만 기능할 때, 지식은 인간을 확장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규격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래서 오늘날의 무지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된 무지다. 굳이 사유하지 않아도 시스템은 굴러가고,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삶은 유지된다. 지식은 더 이상 삶을 견디기 위한 내적 도구가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외적 장치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기묘한 시대를 살고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지식이 공개되어 있지만, 동시에 가장 적게 사유하는 시대다. 모두가 알 수 있지만, 아무도 알려 하지 않는다. 지식이 무가치해져서가 아니라, 지식이 더 이상 지식으로 대우받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식을 독점했기에 권력이 되었고, 현대에는 지식을 권력으로만 환산하기에 지식은 버려졌다. 이 역설 속에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은 정말 권력이 되어야만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지식은 다시 사유로 돌아갈 수 있는가.
어쩌면 지식의 진짜 가치는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 힘이 사라질 때, 인간은 편리해질 수는 있어도 깊어질 수는 없다.
지식은 원래 우리를 성공시키지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를 조금 덜 무지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조금’이, 인간을 인간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