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를 하며 몰입한다. 그 몰입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좋은 상태’에 가깝다. 손은 빨라지고 판단은 즉각적이며, 실수는 줄어든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하지 못한다. 오히려 불편해진다. 이유는 분명하다. 요리를 하는 동안 내 창조력이 정지되어 있다는 감각 때문이다.
요리는 나를 현재에 고정시킨다. 지금 불의 세기, 지금의 질감, 지금의 순서가 중요하다. 이때의 사고는 탐색적이지 않고 기능적이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지에만 집중한다. 문제는 내가 원래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 사고는 결과를 향해 곧장 가지 않는다. 질문을 만들고, 구조를 의심하고, 왜 이것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생각을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몸을 쓰는 일이 사유를 쉬게 해준다고. 그러나 나에게 요리는 사유를 쉬게 해주는 행위가 아니다. 사유를 잠시 정지시키는 행위에 가깝다. 쉬는 것과 차단되는 것은 다르다. 휴식은 다시 사유할 수 있게 만들지만, 차단은 사유가 살아 있다는 감각 자체를 약화시킨다.
나는 요리를 하며 유능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나로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창조력은 손의 정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반복과 숙련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쓸모없어 보이는 생각, 지금 당장 필요 없는 질문, 정리되지 않은 감각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요리는 그런 것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항상 작동한다.
그래서 나는 요리를 하며 괴롭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 사고의 일부가 계속 밀려나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질 때 나는 괴롭지만, 그 괴로움 속에서만 글이 나온다. 통찰이 생기고, 세계를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이 정리된다. 요리는 그 과정을 중단시킨다. 그것이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나는 스스로를 부적응자라고 느낀다. 노동의 리듬에 완전히 몸을 맡기지 못하고, 효율과 몰입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의문이 생긴다. 정말로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구조가 나 같은 사고를 전제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인지.
어쩌면 모든 인간이 일을 통해 비워질 필요는 없다. 어떤 인간은 생각을 멈출 때가 아니라, 생각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때 비로소 안정된다. 나에게 창조력은 사라져야 할 과잉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으면 고통스럽지만 사라지면 더 괴로운 핵심 기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요리를 하며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타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당장 생계를 위해 필요한 기능적 집중과, 내가 누구인지 확인시켜 주는 창조적 사유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채, 한쪽을 잠시 접어두고 있다는 감각이다. 이 감각이 계속될 때, 나는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얇아진다.
이것이 내가 요리를 하며 느끼는 괴로움이다. 몰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