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에게 결혼을 허락했다는 기록을 두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시대를 앞선 인도주의적 조치처럼 말한다. 패널들은 놀란다. “노예들끼리 결혼을 시켜줬다고요?” 마치 그 행위 자체가 선의의 증거인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 해석이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자유를 주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탈출을 막는 가장 정교한 족쇄일 수 있다. 혼자는 도망칠 수 있지만, 가족을 가진 노예는 도망치기 어렵다. 정착은 안정이 아니라 관리의 시작이다.
이 매커니즘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대 사회 역시 결혼을 통해 개인을 뿌리내리게 한다. 책임을 부여하고, 소비를 유도하고,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 일본의 니트족, 그리고 그 흐름을 따라가는 한국 사회를 보면 이 대비는 더 분명해진다. 결혼하지 않는 이들은 소비하지 않고, 노동을 최소화한다. 체제 입장에서 그들은 비효율적인 존재다. 반대로 유부의 삶은 안정이라는 이름의 가짜 행복을 제공받는 대신, 꾸준한 노동과 소비를 요구받는다. 중세 노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날의 노예는 선택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점뿐이다.
결혼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를 사랑에서만 찾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태도다. 제도화된 결혼은 사회 존속을 위한 장치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는 모든 산업을 동원한다. 웨딩 드레스, 다이아몬드, 신혼여행, 미디어 속의 이상적인 부부상까지. 이 모든 것은 결혼을 낭만으로 포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비를 극대화하고 개인을 더 깊이 체제에 묶어 두는 기능을 한다. 그 결과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자본과의 동거가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결혼은 진정한 사랑의 증명이 아니라 제도에 대한 충성에 가깝다. 법과 계약, 사회적 시선 속에서 유지되는 관계는 감정보다 안정에 의해 작동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간은 제도 밖의 사랑에 집착한다. 현실에서 불륜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반복해서 소비된다. 도덕적 문제를 알면서도 관객이 그 관계에 감정 이입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인간이 제도에 포획되지 않은 사랑을 여전히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갈망은 단순한 일탈 욕구가 아니다. 인간의 사랑이 본래 체제와 충돌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모든 질서가 유지되는 이유는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사회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점을 외면한 채 일부일처제의 도덕성만을 강조한다. 윤리는 종종 질서를 정당화하는 언어로 사용된다.
서민의 결혼 제도는 안정된 노동력 확보, 사회적 책임 부여, 그리고 잠재적 저항의 예방이라는 목적을 함께 가진다. 가족을 가진 개인은 쉽게 분노하지 못하고, 쉽게 떠나지 못하며, 쉽게 침묵한다. 이 구조는 중세 노예 결혼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부르주아의 결혼은 귀족의 결혼과 닮아 있다. 그것은 사랑의 결합이 아니라 자본의 결합이며, 감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계산이다.
인간은 제도에 편입될수록 순수성을 잃는다. 법으로 보호받는 순간, 관계는 동시에 법의 통제를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지 않는다. 왜 어떤 사랑은 보호받고, 어떤 사랑은 처벌받는가. 왜 제도 밖의 신뢰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는가.
이 질문은 종종 문화 속에서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타이타닉에 열광한 이유는 단순한 비극적 로맨스 때문이 아니다. 자본을 가진 약혼자와의 안정된 미래보다, 가난하지만 감정이 살아 있는 관계를 선택하는 주인공의 선택에 관객은 자신을 투사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거나 감히 선택하지 못하는 사랑이 스크린 위에서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결혼이 순수한 사랑에서 출발했다면, 이런 서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이 끔찍해지는 지점은 사랑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사랑이 자본과 제도에 의해 관리되기 시작할 때다. 그 순간 관계는 더 이상 두 개인의 신뢰가 아니라 사회적 계약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제도화된 결혼을 버리고도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이 시대의 가능성이라고 본다. 그것은 체제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사랑을 다시 개인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다.
사랑은 본래 도피적이다. 질서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으려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체제는 언제나 사랑을 제도화하려 한다. 관리 가능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안정은 얻었을지 모르지만, 질문 하나를 잃어버렸다. 과연 이 관계는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선택했다고 믿도록 설계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