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먹이 금지

by 신성규

도시에 붙은 작은 문구 하나가 마음을 오래 붙든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그 문장은 생태를 보호하기 위한 경고라기보다, 인간이 설정한 미관의 경계를 침범하지 말라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비둘기는 병을 퍼뜨렸기 때문이 아니라, 더럽혀 보이기 때문에 배제된다. 그 순간 나는 안다. 이 도시는 인간만을 중심에 둔 구조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기준으로 세계를 정렬해 왔다. 효율, 위생, 안전, 아름다움. 그 기준들은 모두 인간의 생존과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다. 문제는 그 기준이 절대적 가치처럼 작동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인간에게 불편한 존재는 곧 ‘문제’가 되고, 문제는 관리·통제·배제의 대상이 된다. 그 과정에서 동물은 권리를 잃고, 약자는 설명되지 않은 채 밀려난다.


나는 그런 장면 앞에서 유독 마음이 약해진다.

강자에게는 쉽게 날을 세우면서도, 약자 앞에서는 판단이 느려지고 말이 줄어든다. 비둘기, 노인, 가난한 사람, 말이 없는 존재들. 사회가 ‘관리 대상’으로 부르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구조의 편에 서기보다 감각의 편에 선다. 그것이 나의 기질이다.


하지만 이 기질은 사회생활에서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 사회는 중립을 요구하고, 효율을 선호하며, 감정의 편향을 경계한다. 강자에게 날카롭고 약자에게 관대한 태도는 “비현실적”이거나 “프로답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나는 자주 괴롭다. 내가 틀린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너무 빠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불편함은 결함이 아니라 마찰에 가깝다. 인간 중심의 시스템과, 인간을 넘어선 윤리 감각 사이의 마찰. 모든 것을 기능으로 환원하는 질서와, 존재 자체를 느끼는 감각 사이의 마찰이다. 내가 느끼는 괴로움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아직 흡수되지 않은 질문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문구는 결국 묻고 있다.

이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약자의 편에 서려다 늘 구조와 충돌하고, 충돌 속에서 스스로를 의심한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다.


어쩌면 사회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을 불편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질서를 유지하는 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고 싶다. 모든 질서가 옳은 것은 아니며, 모든 비효율이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는 인간 중심의 사고 바깥에서 세계를 바라봐야 하고, 그 시선 덕분에 사회는 완전히 굳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괴롭지만, 동시에 안다.

이 감수성은 버려야 할 짐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윤리의 씨앗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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