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K자형 경제, 새로운 형식의 경기침체

by 신성규

우리는 지금 과거의 경기침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경제는 나쁘지 않다. 기업 실적은 견조하고, 생산성 지표는 오히려 개선되고 있으며, 주식시장 역시 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강한 회복력을 보인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소비는 위축되고 고용은 정체되며, 사람들의 체감 경기는 분명히 식어가고 있다. 이 불일치는 일시적인 통계 착시가 아니라, AI라는 새로운 생산 수단이 만들어낸 구조적 변화의 결과에 가깝다. 지금 진행 중인 것은 경기순환 속 침체라기보다는, 경제의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뀌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침체다.


AI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생산성 향상 도구다. 문제는 그 생산성이 더 이상 고용 확대나 임금 상승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거 산업혁명이나 IT 혁명 시기에는 기술이 생산성을 끌어올리면 기업은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이는 소득 증가와 소비 확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AI는 노동을 보조하는 단계를 넘어, 판단·분석·관리·창작의 일부 영역까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특히 중간 숙련 계층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고 있으며, 생산성 향상의 과실은 임금이 아니라 자본과 알고리즘, 플랫폼을 소유한 소수에게 집중된다. 이로 인해 경제 전반의 총생산은 유지되거나 증가하는데, 이를 소비로 흡수해야 할 다수의 가계는 점점 구매력을 잃어간다.


이 지점에서 K자형 경제는 단순한 소득 격차를 넘어, 구조적 단절로 발전한다. 한쪽에서는 AI를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는 기업과 고숙련 인력이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용 불안과 실질 소득 정체에 직면한 다수가 존재한다. 문제는 이 두 집단이 더 이상 같은 경제 순환 안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상위 계층의 자산 증가는 소비보다는 투자와 축적에 머무르고, 하위 및 중간 계층의 소비 위축은 실물 경제의 수요 기반을 잠식한다. 그 결과 기업은 효율적으로 생산하지만 팔 곳이 점점 줄어드는 모순에 직면한다. 이는 과거의 과잉 설비나 금융 거품 붕괴와는 다른, ‘수요 없는 효율성’이라는 형태의 불균형이다.


더 위험한 점은 이 침체가 정책적으로 포착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GDP는 성장하고 있고, 기업 이익도 유지되며, 실업률은 급격히 악화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경기침체의 경고 신호들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정책 당국은 대응을 미루기 쉽다. 그러나 실제 경제의 체력은 서서히 고갈된다. 소비가 줄어들면 서비스업과 내수 산업이 위축되고, 이는 다시 고용을 압박한다. 다만 그 속도는 느리고 점진적이어서 위기라기보다는 ‘활력 상실’에 가깝게 진행된다. 이는 급락보다 더 위험한 형태의 침체다. 한 번 고착되면 회복이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AI가 발달할수록 이 역설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은 계속해서 생산 단가를 낮추고, 기업은 점점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소비할 주체가 줄어드는 순간, 경제는 내부에서부터 균열을 일으킨다. 이는 기술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기술의 성과를 분배하는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결국 다가오는 침체는 경기 관리의 실패가 아니라, 분배 설계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봇세나 디지털세는 단순한 증세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AI 시대에 생산과 소비를 다시 연결하기 위한 구조적 장치에 가깝다. 만약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한다면, 그로 인해 절감된 비용과 창출된 초과이익의 일부는 사회 전체의 소비 능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경제는 생산 능력은 넘치지만 이를 흡수하지 못하는 만성적 침체 상태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로봇세는 노동 대체에 대한 사회적 기여금의 성격을 가지며, 디지털세는 국경을 초월해 작동하는 플랫폼 자본이 만들어낸 부가가치를 다시 현실 경제로 환류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무런 새로운 장치 없이 기존의 시장 논리와 통화 정책만으로 AI 시대의 침체를 극복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점점 비현실적인 가정이 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장을 더 끌어올리는 정책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생산력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소비로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AI는 분명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도구의 진보가 사회의 번영을 자동으로 보장하던 시대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다가올 경기침체는 폭락이나 공포의 얼굴로 오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러나 길게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는 천천히 사라지고, 소비는 조금씩 줄어들며, 사람들은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 채 “예전보다 살기 어려워졌다”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술발 침체의 특징이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AI 이후의 경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다. 이 질문을 외면한 채 효율성과 성장 지표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침체 속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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