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레이스에서

by 신성규

도시에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기분이 든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닳아 없어지고 있다는 느낌. 분명 매일을 버텨내고 있고, 해야 할 일도 해내고 있지만, 그 과정이 삶을 축적시키는 게 아니라 생기를 조금씩 마모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듯한 감각이다.


도시는 효율적인 공간이다. 모든 것은 빠르고, 연결은 촘촘하며, 선택지는 넘쳐난다. 그러나 그 효율은 이상하게도 인간의 행복과는 자주 어긋난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묻지 않는다. 속도는 집단적으로 합의되어 있지만, 방향은 각자 모른 채 따라가는 구조. 마치 거대한 러닝머신 위에서 서로의 페이스만 확인하며 달리는 풍경과 닮았다.


문제는 이 레이스의 본질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열심히 달리면 보상이 있을 거라 믿는 사람은 지칠지언정 덜 괴롭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이 방향이 정말 나를 살리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된 사람에게 도시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성과, 연봉, 지위, 평판 같은 지표들이 삶의 질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뒤에도, 시스템 안에서 계속 달려야 하는 모순. 바로 그 지점에서 정신은 피로가 아니라 소진을 경험한다.


도시의 공기는 생각보다 전염성이 강하다.

비교, 조급함, 불안,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 같은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떠돈다. 우리는 그것을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 문제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환경이 만들어내는 집단 정서에 가깝다. 모두가 초조해 보이는 공간에서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생긴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의 리듬이 아니라, 주변의 평균 속도에 맞춰 삶을 조정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희미해지는 것은 판단 기준이다.

원래 나는 무엇을 원했는지, 어떤 상태가 나에게 건강한지, 무엇을 할 때 마음이 살아나는지 같은 질문은 뒤로 밀린다. 대신 “남들은 어떻게 사는가”가 기준이 된다. 도시가 주입하는 어리석음은 지식 부족이 아니라 기준 상실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굴러가게 만드는 환경, 그 편리함이 결국 사유의 근육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도시에서 성공해 보이면서도 점점 공허해진다. 외형은 상승 곡선을 그리는데 내면은 납작해지는 경험.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문제라고 여기며 괴로워하지만, 어쩌면 그 불편함은 감각이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방향에 의문을 품는 능력,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자율성일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도망이 아니라 거리다.

도시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더라도, 도시의 논리를 내면화하지 않는 태도. 일을 생존의 수단으로 두되 존재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구분. 비교의 프레임이 밀려올 때 한 발 물러서 “이건 도시의 기준이지, 내 기준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연습.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다른 층위에 서 있을 수 있다.


도시는 앞으로도 더 빨라질 것이다. 경쟁은 더 정교해지고, 보상은 더 화려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속도가 인간의 밀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납득하며, 자기 리듬으로 살아가는 능력은 느려 보이지만 삶을 실제로 지탱하는 힘에 가깝다.


어쩌면 우리가 도시에서 느끼는 이 피로의 정체는 과로가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의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 상태에서 오는 존재의 압박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뚜렷이 자각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일수록, 아직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도시가 우리를 닳게 만들 수는 있어도, 우리 안의 기준까지 완전히 빼앗지는 못한다.

그 기준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한, 우리는 레이스 위에 서 있더라도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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