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불행한 이유

by 신성규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된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복잡한 시대를 살고 있고, 수많은 이유로 괴로워한다고 말하지만, 그 모든 이유의 바닥에는 하나의 공백이 놓여 있는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의 부재.


사람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 밥을 벌어 먹고, 일을 하고, 취미를 즐기고, 친구를 만나며 하루를 채울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고 모든 소리가 가라앉을 때, 마음속에 남는 것은 이상할 만큼 선명한 외로움이다. 그것은 단순히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존재가 없다는 감각, 내 불안과 약함을 드러내도 괜찮을 안전한 공간이 없다는 느낌에서 오는 허기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가볍게 말한다. 설렘, 끌림, 열정, 혹은 외로움의 해소 정도로 축소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가장 낮은 모습까지 보여주어도 버려지지 않는 경험이다. 실망스러운 나, 초라한 나, 질투하고 흔들리는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 앞에서만 사람은 비로소 긴장을 푼다. 세상을 향해 세워두었던 방어가 내려가고, 억지로 만들어낸 강함이 무너진다.


왜 인간은 그토록 불행한가. 나는 그것이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는 인간은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 쌓는다. 돈을 벌고, 지위를 얻고, 타인의 시선을 확보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것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성과는 사라지고, 젊음은 줄어들고, 세상의 평가도 바뀐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불안하다. 내가 가진 것이 사라지면 나라는 존재도 사라질까 봐.


하지만 진정한 사랑 속에 있을 때 사람은 조금 다르다. 그 사람 앞에서는 증명할 필요가 없다. 잘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실패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경험.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죽음도 덜 두렵다고 말한다. 삶이 완전히 채워졌다는 감각을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이 더 또렷해진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젊을 때는 가능성이 많고, 선택지도 넓다. 사랑이 아직 오지 않았을 뿐, 언젠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기대는 점점 현실적인 계산으로 바뀐다. ‘나는 과연 누군가를 만나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 때, 불행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변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원한다. 단순한 교류가 아니라, 깊이 묶이는 관계를 원한다. 함께 늙어가고, 함께 기억을 쌓고, 서로의 시간을 증인이 되어주는 관계. 그런 연결이 없다면 우리는 끝없이 떠다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어디에도 완전히 닿지 못한 채.


물론 사랑이 모든 고통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갈등이 있고, 오해가 있고, 상처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그래도 이 사람과 함께”라는 전제가 있다면 삶의 결은 달라진다.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것이 되고, 불안은 나눌 수 있는 것이 된다.


나는 인간이 약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깊이 느낄 수 있는 존재라서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깊이를 받아줄 또 다른 깊이를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 안으로 무너진다. 그래서 불행은 때때로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갈망은 결국 한 문장으로 귀결되는지도 모른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존재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사랑일 때, 인간은 비로소 평온해진다.


나는 여전히 믿고 싶다. 진정한 사랑에 빠진 인간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고. 역경이 와도, 시간이 흘러도, 세상이 등을 돌려도,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버틸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불행은, 아직 그런 사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쩌면 하나의 여정일지도 모른다. 성공을 향한 여정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기 위한 긴 방황. 그리고 그 방황 끝에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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