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녀를 많이 만났다고 생각한다.
계절마다 유행이 바뀌듯, 아름다움도 형태를 달리하며 나타났다.
어떤 미녀는 화려했고, 어떤 미녀는 도도했고, 어떤 미녀는 자신이 미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도
얼굴은 흐려지고 분위기만 남는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계속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더 아름다웠던 사람.
빛을 받지 않아도 빛이 났던 사람.
나는 그런 미녀를 떠올릴 때마다
주식 차트를 본다.
삼성전자를 처음 샀던 날이 생각난다.
그건 폭등주가 아니었다.
시장을 흔드는 테마도 아니었다.
다만, 너무 당연해서 별로 흥분되지 않는 기업이었다.
그래서 오래 들고 있지 못했다.
조금 오르면 팔고,
조금 흔들리면 불안해했다.
시장의 뉴스에 반응했고,
사람들의 말에 흔들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주식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자기 속도로 성장했다.
그제야 나는 깨닫는다.
진짜 가치는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것을.
화장을 지운 얼굴처럼,
본질은 조용하다.
민낯이 아름다운 미녀는
처음엔 자극이 약하다.
눈에 띄기보다 마음에 남는다.
자랑하고 싶기보다 오래 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나는 늘
시장처럼 조급했다.
더 화려한 것,
더 빠른 것,
더 즉각적인 반응을 주는 것에 끌렸다.
그리고 결국
가장 안정적인 것을 놓쳤다.
미녀는 항상 생각난다.
그녀가 특별해서라기보다
내가 그 가치를 오래 들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도 주식도 비슷하다.
본질이 단단한 것은
시간이 편이 된다.
그때의 나는
시간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불 꺼진 방에서 생각한다.
그녀를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그녀의 장기 보유자가 되지 못한
나 자신의 미숙함을 후회하는 걸까.
미녀는 삼성전자다.
폭등하지 않아도,
늘 거기 있는 것.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것.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가치를 증명하는 것.
그리고 우리는 늘
그걸 팔고 난 뒤에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