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과 나의 삶

by 신성규

현대 사회는 선택의 자유를 확장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기준을 외부에 고정시킨다. 정보는 넘쳐나고 자극은 점점 강해지며, 자본주의는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하고 외모지상주의는 더 나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 구조는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을 재구성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그 시스템의 일부로 변해간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한다. 비교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 되었고, 타인의 삶은 참고가 아니라 기준이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욕망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묻지 않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 믿는 것들조차 사실은 사회가 반복적으로 주입한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인간은 욕망을 생성하는 존재가 아니라, 욕망을 재생산하는 존재로 전환된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선택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이미 설계된 선택지 안에서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는 확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기준이 외부에 있는 한 그것은 통제된 자유에 불과하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를 살아간다고 믿으면서도 점점 더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구조 속으로 흡수된다.


어느 순간, 아주 늦게, 질문이 찾아온다. 지금 이 삶이 정말 내가 원했던 삶인가. 그러나 이 질문은 단순한 회의가 아니라 하나의 붕괴다. 자신이 쌓아온 시간과 선택들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은, 인간의 정체성을 근본부터 흔든다.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을 마주하는 대신 다시 바쁜 일상과 자극 속으로 도망친다. 의식은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가장 희소한 것은 정보도, 자본도 아닌 ‘의식’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능력.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다시 주체로 되돌리는 시작점이다.


의식 없는 삶은 효율적이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이미 검증된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효율성의 대가는 명확하다. 삶의 주도권을 상실하는 것이다. 반대로 의식적인 삶은 비효율적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선택의 이유를 검증하며, 때로는 모두가 가는 길을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만 자신만의 기준이 만들어진다. 이 기준은 외부의 평가나 비교가 침투할 수 없는 내면의 질서가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느냐이다. 기준이 외부에 있을 때 인간은 끝없이 흔들린다.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 더 높은 위치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끝에는 항상 또 다른 비교가 기다리고 있다. 반대로 기준이 내부에 형성될 때, 삶은 더 이상 경쟁이 아니라 방향이 된다.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아무 제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을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깝다. 내가 원하는 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것이 진짜 나의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구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질문은 더 깊어진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왜 살아가는가. 만약 인간이 단순히 생산하고 소비하는 존재라면, 이 모든 고통과 질문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의미를 찾고, 자신의 존재를 해석하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단순한 구조의 일부가 아니라, 그 구조를 인식하고 넘어설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짜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더 빠른 기술이나 더 큰 자본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을 놓치지 않는 인간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왜 살아가는지를 끝까지 추적하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기준과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편안하게 흘러가며 점점 자신을 잃어갈 것인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의식 속에서 자신을 찾아갈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 순간 반복된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타인의 삶’에서 벗어나 ‘나의 삶’으로 이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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