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보는 프로그래밍은 작동할 것인가 vs. 작동하지 않을 것인가의 세계. 정답이 있고, 결과가 있고, 성능이 있다. 내 감정과 머뭇거림은 코드의 논리 흐름 안에서 오류로 처리된다. 나는 철학을 배웠다. 그 말은 곧, 유용하지 않음을 견디는 사고의 훈련을 거쳤다는 뜻이다. 의미 없는 질문, 답이 없는 질문, 사유의 끝에서 도달하는 침묵조차도 하나의 진실이 될 수 있던 시절.
그런데 이제, 세상이 원하는 건 ‘문제 해결’, ‘생산성’, ‘효율성’이다. 내 마음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호출된다. 나는 내가 만드는 코드 속에서 나를 잃을까 두렵다. 그것이 단지 무언가를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을 때, 나의 감정, 나의 질문, 나의 방향은 기계의 톱니처럼 깎여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프로그래밍이 문제는 아니라는 걸. 오히려 이 두려움은 ‘내 존재가 언제 도구화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인간이 “행동자”가 아니라 “노동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살아간다. 나는 그 경계에 서 있다. 기술을 배우며, 내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 순간.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한다. 내가 만든 시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갈수록, 내 마음은 어떤 구조물 속 부품처럼 보이지 않게 희생되는 건 아닐까?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사고하는 인간이 점점 늘어난 것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내가 두려워한 것.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나 자신이 수단이 되는 것.
하지만 철학이 나에게 남긴 건 하나 더 있다. 바로 의심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기술이 정말로 나를 도구로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스스로를 도구로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기술은 본질적으로 중립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나라는 사실을. 나는 프로그래밍을 문제 해결이 아니라 의미 설계의 언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