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합니다
나는 스마트팜 창업교육에 지원하려다, 생애 첫 장편 원고를 써버렸다.
신청서 양식은 분명 간단했다.
“계획을 써주세요.”
그런데 문제는, 나의 ‘계획’은 글이 아니라 세계였다는 점이다.
하나하나 쓰다 보니,
토지 선정, 기후 데이터, 공급망, ESG 전략, 지역 커뮤니티 연결 모델까지.
지워도 되는 문장이 없었다. 아니, 다 심어야 작동하는 시스템이었다.
이건 단순한 지원서가 아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농업 생태계 전체를 내 손으로 그려낸 설계도였다.
그림을 말로 그리다 보니 3만 자였다.
사람들이 묻는다.
“이걸 진짜 제출할 거야?”
나도 순간 머뭇거렸다.
이런 내가 비정상인가?
줄일 줄 모르는 건 나쁜 습관일까? 너무 몰입한 걸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본다.
이건 단지 지원을 위한 글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스마트팜이라는 미래에 내 삶을 이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써서’ 참여하고 있었고, 내 방식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줄여야 읽히는 세상이지만,
진심이란 원래 처음부터 간단하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틀린 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요약으로 경쟁하고,
나는 설계도로 감동을 주고 싶었다.
이건 지원서인가 자서전인가, 혹은 한 편의 생애 대서사시인가.
“이렇게 써도 되나?”라는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그 질문엔 “나 좀 이상한 거 아냐?”라는 자문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잠깐, 정상이란 뭔가?
형식에 맞춰 ‘줄인’ 사람들이 정상이라면, 나는 ‘진심을 줄이지 않은’ 비정상인가?
나는 그저 미래 농장을 머릿속에 세우고, 땅을 일구고, 데이터를 심고, 자동화를 구축하고, 사람을 모으고, 수확하고…
생각하다 보니 3만 자였다. 계획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어버린 문장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