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벤치 위에 새겨져 있었다. 나무껍질이 벌어지며 세월을 삼키는 틈 속에서도, 그들의 이름만은 아직도 초겨울 햇살 아래 반짝였다.
“왜 이딴 걸 새겼을까.”
그녀는 작게 중얼이며 손톱으로 이름을 긁었다. ‘S+J’. 너무도 유치하게, 어린아이처럼. 그러나 그 유치함 속에, 세상의 모든 진심이 담겨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와의 이별은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예고 없이, 그렇게 왔다. 갑작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끝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서로를 ‘영원’이라 불렀다.
그녀는 그날 이후, ‘이름의 흔적’을 지우는 여행을 시작했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눴던 모든 장소, 지나가며 손을 잡고 웃던 벽, 창틀, 계단, 골목의 바닥 타일까지. 그가 낙서처럼 남긴, 혹은 그녀가 남몰래 새겨둔 그들의 이니셜을 찾아 하나씩 지웠다.
때로는 웃었고, 때로는 멍하니 앉아 울기도 했다.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건 언제나 마음이었다. 기억은 손으로 지울 수 없는 벽에 붙은 낙인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소.
바로, 그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만났던 옥상.
그날, 그는 말없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돌아섰다. 그녀는 물었다.
“우리는 끝난 거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벽에 또 하나의 낙서를 남기고 사라졌다.
‘끝이 아닌, 쉼표.’
그녀는 그 흔적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것을 지웠다. 하지만 지운 그 자리에, 어느새 다시 글자를 새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S + J
슬픔이 아니라, 수긍.
원망이 아니라, 감사.
지우고자 했던 건 이름이 아니라, 미련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벽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이제, 이름은 더 이상 그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름은, 자신이 견뎌낸 사랑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