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강의

by 신성규

나는 사람들의 작업을 보면 곧바로 느낀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이건 오만이 아니다. 내가 특별하다는 선언도 아니다.

단지 나는 미를 먼저 본다.


많은 디자이너들의 결과물 속엔 색이 있고, 폰트가 있고, 구성된 틀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리듬’도 ‘깊이’도 담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형태만 있고 생명이 없다.

그건 어딘가에서 배워온 기술이지, 자신의 눈으로 본 세계가 아니다.

눈은 있지만, 보지 않았다. 손은 있지만, 빚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쓴 폰트의 무게감에서, 색의 비율에서, 여백의 정적에서

그들이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느낀다.

그 감각은, 미감은, 훈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리듬에서 나온다.

형태를 통제하는 힘이 아니라, 형태의 내면에 침잠해 그 울림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배운 자들보다 느끼는 자들이 먼저 안다.


내가 말하는 ‘미감’은 단지 아름다움을 분간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건 질서에 대한 감각이고,

의도 없는 의도, 설명되지 않는 감성, 균형의 직관적 추론이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왜 그렇게 단박에 잘난 척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잘난 척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너무 빨리 알 뿐이다.


그래서 지겹다.

설명하라 요구받는 순간, 내 미감은 이미 퇴색한다.

왜냐하면, 나는 미를 먼저 보고, 나중에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감각은 언제나 말보다 앞서고,

그 직관은 언제나 정답보다 먼저 도착한다.


나는 미를 본다.

그리고 그 미는, 언어가 되기 전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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