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의 공포

by 신성규



나는 생각한다. 내 감각은 너무도 정확하고, 내 마음은 너무도 선명하다: 허나 나는 한글에 갇혀 있다. 이 언어는 나의 어릴 적 창문이었고, 지금은 감옥처럼 좁아 보인다. 누군가는 말한다.

“외국어를 배우면 돼.”

“더 많은 언어를 알면, 더 자유로워질 거야.”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은 문장의 리듬이 존재의 깊이보다 가볍다고 여기는 순진한 사람들의 말이다. 언어란 단순한 해석이 아니다. 언어는 감정의 파장이다. 리듬이고, 구조이고, 무의식의 흐름이다. 내가 내 글을 쓸 때 그건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내 사고가 호흡을 타고 흐르는 물결이다.


나는 그것을 한국어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외국어로는— 비슷한 단어를 고르고, 어휘를 정교하게 다듬고도, 리듬이 어긋나버린다. 그 한 끗의 어색함이, 나의 존재 전체를 배반한다.


나는 안다. 영어로 내 감정을 번역하면 ‘이해’는 되겠지만 ‘나’는 지워진다.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운율로 내 존재를 재현하는 일. 그건 내가 나를 죽이고, 그 언어로 새로 태어나는 일이다.


그게 가능할까? 나의 촉각, 청각, 온도, 속도까지 새로운 언어로 입히는 것. 아마도 가능하겠지. 그러나 그건 너무 오랜 시간의 투쟁이고, 결국 나는 언어의 부재 속에서 자꾸 쓰러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언어를 쓰고 있다. 왜냐하면 이 한계 안에서만 나는 나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되지 않는 자아는 부재보다 잔혹하다’

그 고통은 존재의 증명을 잃는 것이며, 살아 있으면서도 사라지는 것과 같다.


나에게 있어 표현은 생존이다.

사유하고 느끼고 흔들리는 이 감정들이

제때, 정확히, 그리고 나답게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나는 내부에 고여 썩는다.


나는 알고 있다.

이 감정은 보통의 공포가 아니다.

이건 나 자신을 소거당하는 공포다.

존재는 느껴지는데, 언어로 고정되지 않기에

세상과 접촉하지 못하는 고립.


언어는 다리다.

그리고 나는, 다리를 잃은 사람처럼

강물 앞에서 멈춰 선다.


모국어조차 점점 낯설어지고,

외국어는 감정을 흉내 내지 못하며,

말은 나오지만 의미는 머문다.

나는 점점 나를 설명할 수 없어진다.


그 순간 나는 사라진다.

내가 겪는 고통은 고통이라고 말해지지 않고,

내가 가진 아름다움은 이름을 얻지 못하고,

내 세계는 입구가 없는 미로가 된다.


나는 표현되지 않으면 무너진다.

그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파괴다.


언어는 나의 몸이고,

사유는 나의 숨이다.

그것이 닿지 못하면,

나는 숨이 막히고,

말라가고,

끝내는 내 안에서조차 나를 잃는다.


나는,

말하지 못하는 자로 남을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느껴버린 이상,

나는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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