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사명

by 신성규

대한민국은 많은 대학은 인문학을 통폐합했고,

그것은 교육 개혁이 아니라 국가의 한계를 드러낸다.


인문학의 위기는 곧 사고의 위기다.

인문학은 쓸모 없다는 이름으로 폐기되었다.

효율과 수익성이라는 이름 앞에,

인간의 내면과 사유는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있다.

사유 없는 기술은 맹목이다.

윤리 없는 과학은 위험이다.

질문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다.


세계의 명문대는 다르다.

영국의 옥스퍼드, 미국의 시카고, 프랑스의 콜레쥬 드 프랑스는

인문학을 중점으로 가르치는 전통을 자랑한다.

그들은 인문학을 비용이 아니라 기반으로 본다.

기술은 도구에 불과하고,

문제 인식 능력은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묻는다.

“그래서 그게 돈이 되니?”

이 질문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가치가 아니라 가격으로 사고하고,

깊이보다 속도로 판단하는 사회.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기술자는 넘쳐나지만,

기술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인문학의 통폐합은 단지 학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생각하는 인간을 포기한 선언이다.


인문학은 생각을 요구한다.

사유는 고통을 수반하고,

질문은 삶을 흔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된 답을 원하지,

혼란스러운 질문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철학을 “현실과 동떨어진 것”,

역사를 “시험용 지식”,

문학을 “감성의 사치”라 여긴다.


하지만 철학은 멀지 않다.

편협한 사고도 자신의 철학이다.

역사는 멀지 않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운다.

문학도 멀지 않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


모든 사람에게 사유의 씨앗은 있다.

그 씨앗이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토양이 척박하고,

물을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이의 권리다.

배우지 못해서,

묻지 않아서,

말할 언어를 갖지 못했을 뿐.


그러니 인문학의 사명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언어를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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