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해방의 언어가 자본에 의해 ‘동원 전략’으로 재배치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페미니즘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여성의 권리 회복과 자아 실현을 외치던 그 움직임은, 이제 대기업의 ESG 보고서에서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국가의 성장 전략 속 ‘여성 경제활동 인구 확대’라는 항목으로 재편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일하게 되었고, 더 많은 임금이 지급되었으며, 더 많은 소비가 가능해졌지만 정작 삶은 과거보다 더 가난해졌다.
한때 남성 한 명의 노동만으로 유지되던 가정은 이제 여성과 남성의 맞벌이조차 주택 한 채를 마련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시대의 변화가 아니다. 노동력은 배로 늘었고, 인간은 더 오래 일하며, 삶은 이전보다 더 쪼개지고 피곤해졌다.
나는 이것이 자본 권력의 승리라고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실패를 떠올리게 된다.
정치적 해방의 언어는 자본의 통제 기제로 전환되었고, 권력의 균형은 다시 자본의 손 안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해방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세련된 방식으로 동원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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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언어, 그리고 페미니즘의 탄생
19세기의 여성 해방 운동은 정치적 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한 거대한 투쟁이었다. 재산권, 교육권, 참정권—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회복하려는 전선에서 시작되었다. 여성은 목소리를 가지기 위해 싸웠고, 그 싸움은 보통선거권의 확대와 함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었다. 정치적 해방은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 회복이라는 믿음. 즉, 페미니즘은 근본적으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사유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지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싶다는 외침이 아니었으며,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고자 하는 열망도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인간이 사회에서 타자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 그 자체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 언어는, 20세기 말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점차 경제 담론 속에서 재해석되기 시작한다.
“진입”과 “활용”이라는 말의 함정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지표로 제시되고, 기업은 여성 인재를 ‘활용’한다는 미명하에 조직 구조를 다양화하고 이미지를 세탁한다. 이제 여성의 사회 진출은 그녀들의 주체적 결정이기보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노동력 확보 전략으로 정당화된다.
해방은 어디로 갔는가? 페미니즘은 정치에서 경제로, 존엄에서 지표로, 인간에서 자원으로 전이되었다. 그리고 그 전이의 과정 속에는 자본이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해방의 언어는, 그 실체를 잃고, ‘동원의 언어’로 기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