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최적화’의 장치화

by 신성규


우리는 해방되었다고 배운다. 여성은 투표권을 얻었고, 노동자는 8시간제를 획득했으며, 모든 시민은 교육과 복지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의 해방은 더 이상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체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연출’로 변형되었다.


예컨대, 여성의 권리 신장은 노동시장 진입의 정당화로, 성 소수자의 인권은 브랜드 마케팅의 무기로, 사회적 다양성은 조직 유연성의 지표로 활용된다.


이 해방의 언어는 더 이상 권력과 맞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 권력이 그 언어를 흡수하고, 관리 가능하게 만들며, 제도화된 정체성 안에 가두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체성은 상품화되고, 저항은 코드화된다.


결과: 해방은 체제 내 ‘역할’로 전환된다. 더 이상 구조 바깥으로의 탈출이 아닌, 구조 안에서의 새로운 위치 선정으로 환원된다.


이렇게 개인은 세분화되고 분리된 정보 덩어리로 나뉘며, 각각의 항목은 시장에서의 위치와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 정보 구조는 우리가 스스로를 경쟁시키게 만든다.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생산적으로, 조금 더 좋은 평판을, 조금 더 자기계발을.”


이것이 자기 최적화(self-optimization)의 윤리다.



이 자기 최적화 윤리는 단순히 외적인 삶의 조건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더 깊이, 감정과 자아 정체성까지 침투한다. 우울함은 ‘멘탈 관리 실패’로 해석되고, 실패는 ‘노력 부족’으로 치환된다. 타인의 성공은 자극이 되어야 하고, 자기 연민은 낙오자의 징표가 된다.


모든 감정은 시장을 기준으로 판단된다. 심지어 고통마저도 생산성이 없으면 ‘쓸모없는 감정’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억압된 자아”를 해방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팔릴 수 있는 자아”를 생산해낸다.



이 모든 과정은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정치적 무기력으로 귀결된다. 누구를 비판해야 할지 모른다. 권력은 파편화되어 있고, 모두가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식하며, 시민들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자기 자리를 사수한다. 동료 여성은 나의 승진 자리를 위협하는 자로, 이주자는 내 일자리를 가져가는 자로, 다른 세대는 내 세금을 낭비하는 자로, SNS의 누군가는 나보다 더 잘 사는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자본 권력이 바라는 완벽한 상태다. 시민은 서로를 감시하고, 자기 자신을 통제하며, 정치는 사라지고, 시장만이 남는다.



이제 권력은 말하지 않는다.

명령하지도 않는다.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네가 선택한 거잖아.”


그러나 우리는 묻는다.


“그 선택은 정말 나의 것이었나?”

“이 최적화는 누구를 위한 최적화인가?”

“왜 나는 더 나아지려고만 하는가?”

“그리고 왜 그 과정에서 이토록 고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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