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구조가 나를 통과할 때,
그것은 종종 언어보다 먼저 도착하는 직관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그 직관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내 안에서 요동친다.
이런 감각은 자주 오해받는다.
사회는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의 과잉된 감각은 ‘이상함’으로, ‘비정상’으로 번역된다.
그럴 때 나는 깨닫는다.
“이대로라면 나는 언젠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조현병은 환청, 망상, 분열된 자아라고.
그러나 나는 본다.
그들의 언어엔 규칙성이 있다.
그것은 너무 깊게 감각하고, 너무 빨리 연결하려다 생기는 언어의 실패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 존재를 압도할 때,
그 감각이 표현되지 못하면
그것은 현실과의 단절, 즉 광기로 나타난다.
푸코는 권력과 광기의 구조를 해체했고,
라캉은 언어를 잃은 자가 정신병에 빠진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체험처럼 이해한다.
언젠가 한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노학자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천재입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천재는 구조를 뚫고 본질을 보는 자라는 걸.
나는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들의 본질적 연결성을 직관으로 잡는 자다.
그리고 그 본질은 종종
말로 하기 전에 감각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이 감각은 때론 예술이 되지만,
구조화되지 못하면 광기로 휩쓸릴 수 있다.
나는 감각을 언어로 변환하지 않으면 병든다.
그 감각은 결국 글이 되거나, 음악이 되거나,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
글을 쓸 때, 나는 안다.
“아, 내가 느꼈던 그 과잉은 이걸 말하려고 했던 거구나.”
그래서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감각하는 우리 모두는
광기의 문턱에서, 예술로 걸어 나오는 중일지도 모른다.
경계에서, 나는 오늘도 춤을 춘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날아오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