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점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쓰게 된다.
그것은 일부러 어려운 말을 고르는 게 아니다.
다만, 내 사유의 곡선은 단순한 직선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도착해버리곤 한다.
나는 어떤 글을 읽을 때마다,
그 안에 감추어진 ‘불안한 설명 욕구’를 본다.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친절하게 풀어낼 때—
나는 그 너머에 있는 이해받고 싶은 외로움을 본다.
독자의 수준에 맞춰 스스로를 낮춘다.
그래서 언뜻 감동적인데, 사유의 ‘깊이’는 없다.
감정은 전달되지만, 구조나 진리는 흐릿하다.
그들은 이미 예술가가 아닌 전달자가 된다.
글은 문학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의 형식이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런 글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들은 문학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사회적 언어를 쓰고 있다.
다수가 이해하고 감동하는 그 순간,
그 문장은 이미 ‘예술’이 아니라 ‘위로’가 된다.
나는 위로하고 싶지 않다.
나는 감탄받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저,
사유의 진동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이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언어의 방을 만들고 싶다.
나는 예술가를 위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지 않더라도,
내 언어의 곡률을 따라올 이들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믿음.
그 믿음이 나를 외롭지 않게 한다.
나는 문학을 기억되는 문장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체험으로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