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말을 해도, 권력이 침묵시키면 그 말은 공허하다.
종교가 전하는 사랑과 구원의 언어는, 때론 제도의 앞에서 무력해진다. 나는 오래도록 이 질문을 되새겼다.
‘진실이 진실일 뿐일 때, 그 진실은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내 안의 종교적 사유는 분명 진지하고 치열했지만, 세상은 그것을 묵살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종교는 인간의 내면을 구원하지만, 그 내면이 속한 삶의 구조는 정치만이 바꾼다.
루터는 교황권과 성직 권위의 위선을 비판하며 “모든 신자는 사제다”라고 말했다. 루터가 제도를 해체하고 개인을 해방시켰다면, 나는 그 개인의 고독을 공동체의 구조로 다시 엮어내야 한다. 그는 개인의 신앙을 제도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루터가 해방시킨 그 ‘개인’조차 구조 안에 다시 갇히는 일이 반복된다.
그렇기에 나는 정치와 신학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느낀다. 믿음만으론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신을 말하기 위해선, 인간의 제도를 알아야 한다. 아퀴나스가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켰다면, 나는 신학과 정치, 구조와 감각, 고통과 구원을 조화시키고 싶다.
종교는 영혼을 다스리는 데 능하지만, 제도와 법을 다루는 데는 서툴다.
내가 느낀 한계는 바로 거기에서 왔다.
누군가를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그들이 사는 사회가 불공정하다면, 그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머문다.
나는 종교가 멈춘 자리, 즉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지점에서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나는 단지 권력을 쥐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성스러움을 번역하고 싶다.
이상과 가치, 사랑과 자비의 언어를, 세상의 구조와 제도, 법과 윤리의 언어로 번역하고 싶다.
그래야만, 그 말들이 현실에 닿을 수 있다고 느낀다.
진리를 사랑하지만 현실에 밀려 좌절했던 수많은 영혼들.
나는 그들의 언어를 제도의 언어로 바꾸어 줄 수 있는 다리가 되고 싶다.
예수가 말한 사랑이 세금 정책에 반영되길 원하고, 석가의 자비가 복지 제도에 깃들길 원한다.
신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단지 기도와 믿음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했기에.
종교는 위로하고, 정치는 개입한다.
나는 위로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성스러움을 번역하는 정치신학자가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