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정의로운 분배 시스템인가? 아니면, 자본이 조세 제도를 장악한 구조적 착취인가?
부자들은 더 이상 “현금”으로 급여를 받지 않는다. 그들은 주식을 받는다. 그리고 팔지 않음으로써 세금을 회피한다. 스톡옵션과 주식 담보 대출은 그들에게 현금의 유동성을 제공하고, 실질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부를 증가시키는 탈세 합법화 메커니즘이 되었다. 그 결과, 가장 많이 세금을 내는 계층은 중산층의 근로소득자이다. 많이 낸다는 것을 단순한 양으로 비교하는 것이 전형적으로 프레이밍된 오류다.
결론적으로 자본가는 주식을 팔지 않음으로써 세금을 ‘무기한 유예’한다.
그들에게는 노동이 선택 가능하다. 중산층에게는 노동이 생존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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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구조의 분열
고소득층은 소득세를 회피하며, 세율 자체가 실질적으로 무력화된다. 중산층은 실시간으로 과세되고, 세율 구조상 가장 많은 짐을 진다. 중산층은 일한 만큼 과세되고, 받은 만큼 징수당하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자산 수단에 접근하지 못한 채 “노동”에만 매달려 있다. 결국, 중산층의 노동은 수치심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는 부의 재분배를 ‘정의’라고 배웠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내고, 덜 가진 자가 지원받는 것.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고소득층은 세금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법인화, 주식, 자산 증식, 해외 이전, 파운더스 주식, 신탁과 상속 설계. 그들의 세금은 ‘있지만 없는 돈’에 부과되지 않는다.
반면, 중산층은 매달 ‘현금’으로 급여를 받는다. 눈에 보이는 수입에는 눈에 보이는 세금이 붙는다. 세금을 회피할 수 없고, 회피할 수단도 없다. 결국, 중산층은 실질적 조세 부담의 중심이 된다.
여기서 기묘한 재분배가 일어난다.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의 자원의 이전.
물론, 사회적 연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자산가와 대자본가들은 조용히 빠져나간다. 이것이 오늘날의 아이러니다.
왜 고소득층은 세금을 내지 않는가?
그들은 ‘노동’이 아닌 ‘자산’으로 돈을 번다. 노동은 즉시 과세되지만, 자산은 팔기 전까지 과세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팔지 않는다. 대신,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 세금은 없다. 소비는 가능하다. 완벽한 탈출이다.
많은 기술 기업들은 수익을 내지만, 배당을 주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전통적인 기업은 수익이 나면 주주에게 나눈다. 그리고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조차 배당을 하지 않는다. 돈을 쌓아둠으로 세금을 절세하며, 주식의 가치를 올린다.
그들은 왜 배당을 꺼리는가?
배당은 현금이다. 현금은 곧 과세 대상이다. 배당을 받는 순간, 그 즉시 소득세 또는 배당소득세를 낸다. 하지만 주식을 팔지 않으면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주식의 가격은 배당 없이도 오를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배당 대신,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다. 주가는 올라가지만, 주주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대신 자산 가치가 증가한다.
자사주 매입 유통 주식 수 감소 주당 이익(EPS) 증가 주가 상승
이 순환 구조 안에서 절세 + 주주 만족 + 경영진 보상이 모두 충족된다.
그 누구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회사는 주주에게 현금을 주지 않고도 보상을 제공하고, 주주는 주식을 팔지 않음으로써 세금을 유예시킨다.
이 것에서 문제는 아무도 내지 않는 세금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해관계자 이외의 시민들에게, 다른 명목으로 징세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명목으로 징세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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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국가의 모순적 공모
법인세 감면: 고용 창출을 명분으로, 수십 년간 줄어듦.
투자 공제: 기업은 실제 고용보다는 세제 혜택을 위한 형식적 투자만 진행.
세계 자체에서 투자 경쟁을 하며 그 강대국인 미국이나 중국도 세금을 걷지 못해 국가재정이 종이 호랑이 수준이긴 하니 한 국가의 문제보단, 세계의 출혈경쟁, 지속가능하지 않은 구조로 이뤄지고 있다 본다.
이 세계적 흐름으로 실질적으로 국가의 공공 자산이 기업의 사적 이익을 위해 전용되고 있으며, 기업은 생산비를 낮추면서도, 고용이 아닌 기술 자동화와 배당 수익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
노동은 가장 확실하게 세금을 내는 방식이 되었고, 그 말은 곧, 가장 멍청한 방식이 되었다는 뜻이다. 부의 창출 구조가 비노동 소득 중심으로 전환된 지금, 노동의 윤리는 남았지만, 경제적 보상과 명예는 사라졌다.
이는 단순한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질문이며, 철학적 전환점이다. 세금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노동은 여전히 신성한가?
만약 자본이 모든 가치를 장악하고, 국가의 조세 정의가 사라진다면 노동은 더 이상 존중받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노동 없는 부를 향한 열망만이 남고, 사회는 결국 시민의식과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구조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이 것이 윤리적인가?
소득이 아닌, 소득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과세 대상으로 재정의할 것을 요구한다. 이 불균형은, “왜 일해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또한 비노동 소득에 대한 구조적 감세 혜택이 계급 고착을 초래하고 있음을 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