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은 해체를 통해 성장한다

해체를 파괴가 아닌 진화로 보는 시선

by 신성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과목들은 각기 다른 방처럼 나뉘어 있었다. 철학은 인문계의 방에, 물리학은 이과의 방에, 예술은 홀로 자유롭게 떠다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방들 사이의 벽은 내 사고 안에서 스스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철학의 형이상학은 수학의 추상과 만났고, 수학은 물리학의 언어가 되었으며, 물리학은 생명의 비밀에 닿아 생물학과 만났다. 생물학은 인간의 심리를 설명하려 하고, 심리는 경제와 정치, 예술을 통해 다시 인간 존재 전체를 이해하려 한다.


나는 깨닫게 된다. 모든 학문은 세계를 하나의 전체로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다만, 각각의 학문은 그 전체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나 언어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분과는 필요했고, 이제는 통합이 필요하다. 근대 이후 학문은 세분화되었다. 이는 전문성을 심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전체적 이해’ 없이는 각 분과의 한계만 마주한다. 통합은 단지 연결이 아니라, 지성의 진화 방향이다.


모든 학문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존재하는가?” – 철학

“어떻게 작동하는가?” – 과학

“무엇을 의미하는가?” – 예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윤리

“어떻게 조직되는가?” – 정치와 경제


질문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인간과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학문들은 하나의 수렴점으로 향한다.


나는 그 연결을 직관한다. 지성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가지를 본다. 경제, 미학, 인류학, 신경과학… 그러나 나는 뿌리를 본다. 그 뿌리는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 즉 진리에 대한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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