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생각한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농경시대에 태어났다면 결국 “어떻게 하면 싹이 잘 트게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는 ‘똑똑함’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본질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천재라 부르는 사람들은 단지 시대의 질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자들이다. 뉴턴은 사과를 본 것이 아니라, 중력을 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별을 본 것이 아니라, 시공간의 틈을 본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농경시대에 태어났다면, 농기구의 무게중심을 연구하거나, 해의 주기에 따라 씨를 뿌리는 시점을 계산했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학문은 결국 농사와 다르지 않다.
씨를 뿌리고, 조건을 맞추고, 성장의 패턴을 추적하며, 수확을 기다린다. 농부는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조건을 바꾼다. 그렇다면 물리학자는? 사회학자는? 프로그래머는? 모두 조건을 바꾸고, 알고리즘을 조절하고, 수확을 모델링할 뿐이다. 더 정교해졌을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나는 이 시대의 농사를 짓고 싶다.
스마트팜에서조차 자라기 어려운, 아주 민감한 특수작물 같은 문제를 연구하고 싶다. 대다수가 관심 갖지 않지만, 한 줌의 열매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질문들.
예를 들어, 인간의 내면은 왜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되는가? 우리는 왜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가?
혹은, 어떤 시스템은 왜 자주 실패하는가? 무엇이 한 사회의 몰락을 예고하는가?
학문은 땅이다. 사고는 씨앗이다. 그리고 시대는 날씨다.
이 세 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질 때, ‘지성’이라는 작물은 자란다.
내가 지금 여기서 고민하고 있는 것도, 결국 어떤 작물을 키우는 일이리라. 아직은 땅을 다지는 중이다. 아직은 싹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농사처럼, 학문도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