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나를 압도할 때, 내 사고는 둔화되고, 정신은 분산된다. 감각이 예민한 나에게 빛은 단지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감정과 생각의 진폭을 가로지르는 자극이며, 때로는 그 자극이 사고의 흐름을 중단시키는 원인이 된다. 밝은 빛은 과하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요구, 그리고 너무 많은 시야의 자극이 밀려든다. 빛은 세계를 명확하게 하지만, 그 명확함은 나의 내면을 산란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어두운 곳을 찾는다. 빛을 피한 그 어둠 속에서, 세상은 단순해지고, 모든 것이 본질로 수렴된다. 색은 사라지고, 오직 형태만 남는다. 흑백의 세계는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마치 소음 없는 공간처럼, 색이 제거된 시각은 더 깊은 사유를 허용한다. 명료하지 않아서 명료한, 그런 역설적인 장소다. 형태만이 남는 그곳에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더욱 뚜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색이 지워지고, 경계만 남은 풍경 속에서 사고는 깊어진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농축이다. 감각이 덜어지며, 사유는 더 명료해진다.
색채는 지나치게 명확하다. 그것은 선언이고, 외침이며, 개입이다. 반면 어둠은 질문을 남긴다. 해석할 여백을 준다. 나의 정신은 이 여백을 먹고 자란다. 색채가 많은 곳에서는 정신이 외부의 아름다움에 머무르고, 깊이로 가라앉지 못한다. 반면, 어둠은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이다.
어쩌면 이것은 감각이 예민한 사람의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외부 자극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사고라는 내적 세계를 지켜내는 전략.
동시에 어둠 속에서 나는 빛을 더욱 선명히 갈망한다. 빛은 나에게서 멀어졌을 때 오히려 존재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나는 왜 이 어둠 속에서 빛을 상상하는가? 나는 왜 어둠의 온기에 안기면서도, 여전히 빛을 꿈꾸는가?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어둠은 빛을 배척하는 공간이 아니라, 빛을 감별하는 공간이었다. 모든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상태에서는, 진짜 빛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작은 불빛 하나도 눈부시게 느껴진다. 작은 진실 하나가, 하나의 감정이, 하나의 문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체감하게 된다.
사유는 종종 어둠에서 시작된다. 거기엔 불편함도 있고, 고독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내 사고의 뿌리가 되고, 그 고독이 나의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어둠은 나에게 침묵을 요구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나의 언어를 연마한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빛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알게 된다. 빛은 감각의 자극이 아니라, 존재의 응답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사유하고, 그 사유는 결국 빛을 향한 움직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