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순결에 대한 철학적 고찰

by 신성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점점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혹시 ‘혼전순결’이라는 가치관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릴 적 이야기 속의 부모님 세대, 혹은 더 이전 세대에서 ‘혼전순결’은 중요한 규범이었다.

그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날라리’라는 낙인이 따라붙었고, 가족과 사회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했다.

그 시절엔 사랑이든 우연이든 간에 성적인 관계가 생기면 ‘결혼’이라는 책임으로 이어져야만 했다.

그 책임이 두렵기도 하고, 어쩌면 보호막 같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의 사회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성적인 욕망이 억눌린 만큼, 그것이 결혼을 향한 강한 추진력이 되기도 했다.

성적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이고 사회적으로 허용된 통로가 바로 결혼이었다.

어쩌면 결혼은 성적인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피처이자 해방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 깊어서만이 아니라, 몸이 먼저 앞서기도 해서, 결혼을 서둘렀다.

그 안에는 사랑과 책임과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는 훨씬 더 자유롭다.

사람들은 ‘혼전순결’을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본다.

성적인 관계는 더 이상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되는 ‘개인의 경험’이 되었다.

성적 욕망은 억눌러야 할 것이 아니라, 연애와 자유로운 관계 안에서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제 결혼은 ‘책임’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는다.

성경험을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결혼을 고민하지 않는다.

결혼을 해야 할 이유가 줄어든 셈이다.


물론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는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돈을 모으기도 어렵고, 집값은 너무 높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너무나 큰 부담이다.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이라는 가치가 가족의 가치보다 우선이 되는 시대다.

그래서 결혼은 점점 더 늦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전순결’이라는 규범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그리고 성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결혼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 사실이,

결혼을 늦추는 이 사회의 풍경을 설명하는 데 꽤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혼전순결이라는 규범이 사라진 것은,

우리 사회가 ‘결혼’이라는 제도와 ‘사랑’이라는 감정,

그리고 ‘욕망’과 ‘책임’이라는 윤리를 분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책임’이 아니라 ‘자유’를 원한다.

이제 결혼은 더 이상 필연적인 통과의례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사랑이 더 진실해졌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책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한 울타리가 사라졌다는 슬픈 징후일까.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르겠다.

다만 결혼이 늦어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느끼는 것은,

혼전순결의 의미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이 늦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는 우리 사회가 책임과 사랑과 욕망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몸부림이 숨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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