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미래

by 신성규

우리는 여전히 희생제의를 올리고 있다. 누군가의 시간과 몸, 감정과 자유, 때로는 생존 가능성까지 바치면서 말이다. 현대 사회는 전통 종교의 신을 대체한 새로운 신들, 예컨대 ‘국가’, ‘성공’, ‘안정’, ‘가족’, ‘조직’, ‘민족’ 앞에서 더 정교하고 비가시적인 제단을 세웠다. 그리고 이 신들을 위한 제물은 점점 더 일상화되었다. 한국 사회는 그 구조가 특히 견고하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듯한 이 사회의 질서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가장 큰 정치철학적 질문이다.


희생은 늘 은폐된다. 그 구조가 ‘당연한 것’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병역 제도는 국가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다는 말로, 입시 제도는 공정경쟁이라는 이름으로, 가정 내 돌봄은 ‘효’와 ‘가족’이라는 감성적 이상으로 정당화된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진정한 자발성과 대등한 계약은 없다. 이는 곧 자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책임의 회피를 의미한다.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에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구조가 필연이라는 거짓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희생 구조를 정치철학적으로 성찰하려면, 먼저 ‘누가 제단 위에 오르고 있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또 어떤 방식으로 그 기여가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 성찰은 인간이 사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질서를 유지할지를 묻는 근본적 정치철학의 영역이다. 희생의 구조를 해체한다는 것은 곧 질서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이며, 이는 정치의 본질 그 자체이다.


우리가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참여와 연대에 기반한 질서일 것이다. 즉, 전체를 위해 누군가가 소멸해야 하는 구조가 아니라, 전체가 조금씩 책임지고 연대함으로써 누구도 제단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구조. 모든 사회는 일정 수준의 불평등과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이 희생이 되지 않으려면 자발성, 수평성, 회복 가능성이라는 조건이 따라야 한다. ‘당신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구조를 넘어서, ‘나는 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가능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이 질문조차 허용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례의 대체다. 우리는 왜 계속해서 의례적으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질서를 유지하려 하는가. 어쩌면 의례는 인간 공동체의 본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례가 반드시 희생의 형식을 취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희생을 통한 정화 대신, 대화와 분배, 책임을 통한 정화로 전환할 수 있다. 의례는 죽음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제의가 고통의 반복이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을 나누는 장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정화’를 만들 수 있다.


희생 없이도 공동체는 유지될 수 있다. 아니, 진정한 공동체라면 누군가가 기꺼이 참여하고, 그 참여가 존중받으며, 회복 가능한 상호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일 것이다. 희생이 아니라 책임이, 복종이 아니라 연대가 중심이 되는 질서. 그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철학적 목적지이며, 정치적 상상력의 시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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