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미학

by 신성규

서울은 바다를 품은 도시다.

그것도 진짜 바다가 아니라, 강이면서 바다 같은 존재인, 한강이라는 이름의 수평선.


한강을 처음 보는 외국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게 강이라고요?”

그래, 이건 강이다.

하지만 이건 강이 아니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이 물줄기는, 강의 외형을 한 바다다.

도시의 속도를 멈추게 만들고, 시야의 끝을 지워버리며, 인간의 사고를 수평선 위에 띄워 놓는다.

그것은 ‘운하’도 아니고, ‘하천’도 아니다.

서울은 바다를 품었지만, 그것을 강이라는 이름 아래에 조용히 숨겨둔다.


나는 그걸 ‘한강의 신중한 위엄’이라 부른다.


서울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도시 속 산’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수도는 평지 위에 건설되었다. 파리는 언덕이고, 런던은 강가의 평원이다.

그러나 서울은 그렇지 않다.

서울의 산은 도시의 경계에 머물지 않는다. 남산은 도심 안을 뚫고 솟아 있고, 북한산은 서울의 외곽이 아니라 품속이다.

산은 도시를 막는 장벽이 아니라, 도시의 일부다.


이 도시에서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생활이고, 산책은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열린다.


많은 도시들이 역사유산을 보존한다. 그러나 서울은 그것과 함께 산다.

경복궁은 정부청사 옆에서 낮잠을 자고, 창덕궁은 골목과 이어진 채로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종묘, 인사동, 북촌 같은 ‘살아 있는 유산’이 이어진다.


이곳은 ‘보존된 장소’가 아니라 ‘기억이 움직이는 장소’다.

서울은 조선이라는 제국의 수도였고, 일제의 식민지였으며, 군사정권과 민주화의 흔적을 모두 안고 있는 도시다.

그 시간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지금의 서울을 만든다.

이 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같은 좌표에 서 있다.


서울은 단지 편리한 도시가 아니다.

서울은 구조적 도시다.

자연과 문명, 속도와 여백, 전통과 미래가 물리적 거리 안에서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서울은 늘 긴장되어 있고, 또 유기적이다.

그런 구조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배어든다.

수직과 수평,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공을 동시에 감각할 수 있는 존재.

서울은 그렇게, 인간의 정신구조와 닮아 있다.


한강은 강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나는 그것을 서울의 바다라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시와 인간에게 무한함의 감각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물은 흘러가고,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 위를 부유하면서도, 한없이 응축되어 있다.

이 도시는 자기 자신 안에 세계를 품고 있고,

그 세계는 매일 아침 산 위에서, 그리고 밤의 강가에서 다시 태어난다.


서울은 거대한 구조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칠고 차가운 철골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와 자연의 곡선, 인간의 정념이 서로 얽힌 유기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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