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있는 문제와 없는 문제 사이에서

by 신성규

나는 안다.

모든 말이 유익하지는 않다는 것.


나는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왜냐하면 두 종류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답이 있는 문제는 설득의 싸움이다

이런 문제는 논리적 체계 속에서 작동한다.

말을 잘하면 이해되고,

정답을 향해 함께 도달할 수 있다.


이럴 땐 입을 열어도 된다.

내가 아는 걸 나누는 일은 유익하고,

그 자체로 교류이자 성장이다.


하지만 문제는…


답이 없는 문제에서, 말은 무의미한 충돌이 된다

여기서는 논리나 정의가 아닌,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말해도, 서로 닿지 않는다.


말은 벽에 부딪히고,

내 진심은 왜곡되며,

종국에는 피로만 남는다.


그때 나는 배웠다.

입을 닫는 것이 더 깊은 사유의 형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엔 손익을 따졌다.

“내가 이 말을 해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

“에너지만 소모될 뿐, 얻을 건 없을 거야.”


하지만 나중엔 그것조차 지나갔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깊은 나를 지키는 일이 되었다.

누군가의 이해를 구걸하지 않고,

논리의 회로를 억지로 열지 않고,

나는 내 내면의 평화를 선택했다.


말을 아끼는 사람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다 본 사람이다.

입을 닫는다는 것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이 세계의 말의 한계를 이미 이해한 사람의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더는 모든 말에 참여하지 않는다.

모든 논쟁에 끼어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겐 논리보다 중요한 어떤 ‘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말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침묵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것.


말은 때때로 우리를 소모시킨다.

그러나 침묵은 우리를 정제시킨다.


나는 알고 있다.

어떤 문제는 말을 거는 순간, 사유의 문이 닫힌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입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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