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산책을 하던 날이었다.
나는 말했다.
“강박은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 같아.”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럴 수도 있지. 책임지려는 마음이 결국 네 숨을 조이는 거라면.”
나는 나직이 말했다.
“그럼, 책임을 내려놔보면 나아질까? 예를 들면… 규율을 어기는 거야.”
아버지는 웃지 않았다.
“도둑질이라도 해보겠다는 거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쯤, 훔치며 살아보는 거지.”
그날 밤, 나는 정해진 시간에 자지 않았다.
치약은 끝에서 짜지 않았고, 양말은 짝짝이로 신었다.
편의점에서는 계산 전에 물을 마셨고, 버스에서는 타인보다 먼저 앉는 걸 참지 않았다.
카페에선 가장 늦게 줄을 선 사람이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돌아갔다.
내가 규율에서 벗어난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목에서부터 어깨, 등뼈까지 이어지던 경직이 풀리는 소리를.
하루는 신호를 무시했다.
차가 오지 않는 횡단보도 앞에서, 조용히 건넜다.
누군가가 나를 보았다.
그 눈동자에 잠깐의 놀람이 있었고, 이내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 내 안에서 깨어났다.
“나는 세상의 부속이 아니라, 의지로 움직이는 존재다.”
그 문장이 속삭이듯 떠올랐다.
나는 매일 하나씩 작게 훔쳤다.
‘적당한 말투’를 훔쳤고,
‘예의 있는 응답’을 훔쳤고,
‘지켜야 할 위치’에서 반보 벗어났다.
내 삶에 들러붙은 규율의 각진 껍질들을 떼어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았다.
더 이상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내려 애쓰지 않았다.
누군가 실망해도,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 여기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난 요즘 좀 훔치면서 살아.”
그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무엇을 훔쳤는데?”
나는 대답했다.
“자유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