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답을 잘 맞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답이 있는 문제만 푸는 사람이었다.
아침 7시 32분 기상.
오늘의 최적 식단: 현미밥, 달걀 2개, 그릭요거트 150g.
출근길엔 사람이 적은 2호선 뒷칸을 타야 하고, 상사는 “수고하셨습니다”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를 선호했다.
연애는 첫 데이트에 손잡기까지 허용, 3번째 만남엔 고백, 5번째 만남에 “우리”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
그는 틀린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틀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답안지 앱이 있었다.
누구나 사용하는, 아주 흔한 생존 보조 시스템이었다.
그 앱은 삶의 모든 것을 제안했다.
어울리는 말투, 바람직한 감정 반응, 사회적 평균을 기반으로 산출된 이상적인 대답들.
그는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아침 뜨는 ‘오늘의 정답들’을 내려받아, 입력된 대로 살아갔다.
그것은 효율적이었고, 인정받았고, 피곤하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건 오류 없는 응답을 반복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앱이 멈췄다.
정확히는, 앱이 그에게 이상한 질문을 띄웠다.
그는 스마트렌즈를 비볐다.
“당신은 왜 살아 있습니까?”
스크롤을 내려봤지만, 응답 예시는 없었다.
라이브 피드백 기능도 꺼져 있었고, 주변 사용자들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답 없음”이라는 한 줄 문구만이 깜빡였다.
그는 당황했고, 아무도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다.
앱 오류를 신고했지만, 며칠 후 비표준 응답자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곧, 그는 정답 없는 방에 이송되었다.
그 방은 하얬다.
벽에도 천장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의 앞에 하루에 한 번씩 문제 하나가 떴다.
“당신은 슬픔을 이해한 적 있습니까?”
“어머니가 죽는다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 같습니까?”
“사랑이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처음 그는 손이 떨렸다.
앱 없이 문제를 마주한다는 건, 살아본 적 없는 방식이었다.
그는 메모지에 예측 가능한 문장들을 써보고 조합했다.
과거의 데이터를 검색하듯, 기억을 뒤적였지만, 아무 것도 통하지 않았다.
7일째 되던 날, 그는 스스로의 말이 틀려도 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13일째 되는 날, 그는 처음으로 답을 쓰지 않고 질문을 바라보았다.
슬픔이란 무엇인가?
아마 누군가와 나눈 기억을 다시 안고 싶어지는 감정이 아닐까.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를 부를 때 ‘그 사람’이 아니라, ‘나의 그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은 욕망.
어머니가 울고 있다면?
말이 아니라, 그 침묵을 함께 울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정답을 쓰지 않았다.
그는 느꼈다.
그리고 살았다.
30일째 되는 날, 마지막 문제가 떴다.
“이제, 이 방에서 나가시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은 없었지만, 그는 이미 떠나 있었다.
그의 내면에서, 세상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정답이 있는 세상에서, 이제는 답이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법을 아는 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