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은 말했다.
“반복은 지옥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반복 자체가 지옥이 아니라, 반복을 인식해버린 의식이 지옥을 만든다.
일상은 본래 반복이다.
해가 뜨고, 밥을 먹고, 같은 길을 걷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다시 잠든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의식의 레이어를 가진다. 우리는 반복을 반복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반복에 대해 ‘의미 없음’, ‘정체됨’, ‘내가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순간부터 반복은 더 이상 단순한 순환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인식된 감금 상태가 된다.
지옥은 반복 그 자체가 아니다.
지옥은 ‘내가 지금 지루함 속에 있다’는 자각,
‘내가 의미 없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는 판단,
그리고 그로 인해 느껴지는 탈출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이다.
그러니 지옥은 사건이 아니다.
지옥은 구조이고, 메타 구조이며, 뇌의 반응이다.
우리는 반복을 끊으려 애쓰며 도망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망치는 그 자체도 또 다른 반복이다.
새로운 취미,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다시 반복은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더 깊은 메타 지옥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반복을 피할 수 없다면,
반복을 ‘경험’하는 뇌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반복을 인식할 때 느끼는 불만, 탈출 욕구, 그 구조 자체를 낭비하지 말고
그 메타 구조를 해석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반복 속에서 감정을 구조화하고,
반복 안에서 관찰자를 키우고,
반복의 외부로 탈출하려 하지 말고,
반복 내부에서 자유를 회복하는 연습.
그것은 명상일 수도 있고, 예술일 수도 있고, 자기 인식의 깊어짐일 수도 있다.
이를 알아챈 것이 카뮈다.
시지프 신화 속
신의 벌임을 알면서도,
끝없는 형벌임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내는 시지프...
시지프는 자기 운명을 인식하고,
그 반복을 회피하거나 환상으로 도피하지 않으며,
그 부조리의 구조 자체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바다.
지옥은 사건이 아니다.
지옥은 구조이고, 메타 구조이며, 뇌의 반응이다.
그리고 이 메타 구조를 통과할 때,
인간은 무력한 수동자가 아니라,
깨어 있는 관찰자, 그리고 능동적 존재가 될 수 있다.
반복은 삶이다.
그리고 메타 구조는 인간의 선물이다.
우리는 반복을 통해 깨어날 수도 있고,
같은 반복 안에서 다르게 살아낼 수도 있다.
내가 이 부조리의 반복을 인식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고통의 객체가 아니라, 자유의 주체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