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감응할 때 예술이 시작된다

by 신성규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다.

섹스를 잘하는 사람은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 중 가장 섬세한 감각을 가진 이들이

예술가들이라 믿었다.


그들은 사랑을 테크닉으로 배우지 않는다.

감각으로 듣고, 몸으로 공명한다.

그들의 섹스는 주도보다 응답에 가깝고,

능숙함보다 리듬에 가까우며,

이기보다 함께에 가깝다.


이건 결국 감각의 지능에 대한 이야기다.


‘감각의 지능’이란,

IQ나 EQ처럼 점수로 환산되는 능력이 아니라,

몸이 타인의 리듬을 얼마나 섬세하게 감지하고 반응하느냐의 능력이다.


이 감각은 눈빛, 땀, 숨, 떨림,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발화된다.

그리고 그 신호들을 언어 이전의 방식으로 번역하는 능력이다.

감각의 지능이 높은 사람은,

사랑할 때 말보다 촉각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 지능은 훈련된 논리보다

예민한 몸과 내면의 감응 능력에서 비롯된다.


프로이트에게 리비도는 성적 에너지,

곧 인간 행위의 원천이자 충동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리비도를 단순히 “성욕”으로 오해한다.


실은 리비도는 삶의 에너지, 연결하려는 욕망, 창조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예술도 리비도고, 사랑도 리비도다.

예술가는 섹스를 단지 욕망의 해소로 보지 않는다.

그는 섹스를 통해 타자와 하나의 감각적 공간을 만든다.


리비도는 단지 몸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매개로 삶 전체를 감각적으로 감싸 안는 힘이다.

예술가는 그 리비도의 에너지로 그림을 그리고,

연기를 하고, 시를 쓰며, 누군가의 뺨을 어루만진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나는 생각하기 전에, 먼저 살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몸은 도구가 아니다.

몸이 곧 세계를 경험하는 창이다.


그가 말한 감각적 상호침투는

내 몸이 세계와 닿는 방식이며,

내가 누군가와 감응하는 유일한 길이다.

사랑은 살과 살이 만나면서 구성되는 세계의 확장이다.


섹스란 단지 육체의 결합이 아니라,

내 존재의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감각적 철학 행위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몸을 도구로서 쓰는 게 아니라,

몸을 경험 그 자체로 여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자면,

나는 확신하게 된다.

예술가들은 섹스를 잘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감각의 지능을 타고났고,

리비도의 에너지를 억압하지 않으며,

몸을 단순한 외피가 아닌 세계에 대한 창으로 다룬다.


그들에게 사랑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며,

섹스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감응의 품격이다.


세상은 여전히 근육을 말하고, 속도를 말하고, 테크닉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는다.


몸은, 감각이 살아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그 감각이 누군가에게 닿을 때,

비로소 예술이 되고,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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