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뉴스』500호와 전 관장님 인터뷰
일복 많기로 소문난 나는
『박물관뉴스』500호 기념 특별호라는 거대한 파도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는 특별 발행본이라
먼지 묻은 오래된 자료를 다 꺼내 봐야 하는 혼란의 몇 달이었다.
학예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진행한 기획회의에서
퇴임하신 전 관장님의 이야기를 싣는 방향이 나왔다.
여러 고민 끝에 한국 도자사의 대가인
정양모 제6대 국립중앙박물관장님 인터뷰가 결정되었다.
나는 인터뷰 준비를 시작했다.
혼자, 그것도 관장님을 인터뷰하러 가다니
잘 몰랐기에 긴장도 없었고 무모할 만큼 맑기만 했다.
박물관은 생각한 것보다 위계질서가 계단처럼 곧고 높았다.
50년 넘게 이어져 온 『박물관뉴스』 를 맡으며 나는
이렇게 뵙기 어려운 분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그 인터뷰는 일이기 전에 박물관의 경계를 넘는 연습 같았다.
첫 난관은 전 관장님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였다.
그 종이를 한참을 책상 앞에 내려놓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커다란 분께
어떻게 전화를 드려야 할까 고민하며.
통화의 대본을 펜으로 적었다.
그다음 그것을 용기 삼아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약속 당일,
경복궁역에 내려 출구를 두리번거렸다.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로 찾아갔다.
관장님은 사진에서 뵈었을 때 보다
훨씬 다정한 인상이었다.
“박물관 뉴스 담당자입니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그래요, 자리에 앉아요.”
사무실에는 손님들이 몇 분 먼저 와 계셨다.
나는 테이블 한 편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왠지 나와 같은 일개 직원이 혼자 온 것을
섭섭해하시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키워갈 때쯤
관장님께서는 손님 한 분 한 분께
나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온 신문 담당자”라고 소개해주셨다.
이야기가 시작되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받아 적기에도 숨이 찰 만큼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준비해 간 질문들을 하나씩 꺼냈다.
짧고 얕은 질문도 있었지만
관장님은 그 질문들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다.
그렇게 한참을
책에서 읽을 수 없었던
한국 박물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나눠 주신 이야기의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관장님이라 불렀지만, 그날만큼은 직급의 계단 없이 같은 시선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머뭇거리다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관장님은 가장 좋아하는 유물이 무엇인가요?”
관장님은 국보 백자 대접을 말씀하셨다.
나는 그 답을 듣고 기뻤지만, 내 보물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깨지고 부족해도 따뜻한 유물이 좋다는 말은 그분 앞에서 서툴게 느껴져, 조용히 접었다.
그 서투름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