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바깥의 자리에서
내가 면접일을 몰랐던 이유는,
그날의 공지가 엉뚱한 게시판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면접은 늦지 않았다.
나는 문화사업과에 자리를 받았다.
첫 출근의 미세한 긴장감과 불편함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6년간 한 직장에 다녔고,
이후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가다가
다시 박물관에 들어오게 된 코스였다.
늘 자유로운 곳에서 일했고,
자유로운 행동과 옷차림으로 일해왔다.
첫 출근의 날, 출판팀 선배가 이야기를 전했다.
“내일은 두 분의 단장님과
학예실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갈 예정이니,
단.정.하.게. 입고 와야 합니다.”
순간 나는 ‘단정함’의 정의를 고민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차분한 옷은 무엇일까?
다음 날 나는 회색 모직 바지에, 미세한 펄이 섞인 흰 니트,
굽 낮은 구두를 신었다. 머리는 질끈 묶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단정한’ 선택이었다.
출근한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는 선배의 눈빛에서
아주 미세한 망설임을 읽었다.
그 정도 시선은 내가 지나온 시간에 비하면 가벼운 압박이었다.
하루 종일 내 자리의 전화가 울렸다.
그 번호는 박물관신문에 실린 모든 이야기가 통과한 번호였다.
전화를 받을 때면 호흡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내 소속을 말했다.
“안녕하세요.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사업과 출판팀, ○○○입니다.”
그 긴 호칭을 말하며 나의 좌표를 느끼곤 했다.
사람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줄여 “중박”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 줄임말이 싫었다.
배정된 자리는 문화사업과 출입문 쪽이었다.
부서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말을 거는 자리였고,
자연스럽게 가장 바깥에 가까운 자리였다.
나는 7년 차 경력직이었지만, 다시 막내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전 직장에서 받는 직함은 어깨에 올려놓은 압박이었는데,
뭔가 새로 시작하는 희망이 느껴졌다.
다행이라면 내 책상 앞에는
천장까지 닿을 듯한 행운목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넓은 잎사귀들이 나만의 작은 파티션이 되어주었다.
그 나무 뒤에 숨어, 나는 박물관의 시간을 배웠다.
이곳의 시간은 바깥세상과 다르게 흘렀다.
전 직장에서는 분 단위로 쪼개 쓰던 시간이,
이곳에서는 겹겹이 쌓이는 느낌으로 흘렀다.
하루의 업무는 전속력으로 달리면 오전 만에 끝나기도 했지만,
채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남는 시간에는 박물관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부로 채워졌다.
편집일만 해오던 내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의 글을 다듬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했다.
쌓여 있는 전시 도록을 읽고,
여러 교수님의 논문을 찾아보았다.
역사책을 다시 읽었고,
한자의 홍수 속에서, 사전은 늘 곁에 두었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두 그루의 행운목 아래서,
나는 비로소 숨을 고르며
읽다가, 쓰다가, 전화를 받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