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앉아있던 1,500살 반가사유상에게
박물관도 누군가에게는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었다.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의 고초는 이곳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편집 업무는 늘 여러 부서를 오가는 일이었다.
자료를 건네받고, 설명을 듣고,
흩어진 이야기들을 한 권으로 묶어야 했다.
평생 하나의 주제를 연구해 온 사람들이
내어준 기록을 다룬다는 일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매달 책 한 권을 완성하는 과정에서는
그 책임감이 종종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섰다.
학예사 선생님들의 권위 앞에서는 종종 힘이 달렸다.
그럴 때면 나는 반가사유상을 찾았다.
사유의 방으로 개편되기 전에는
한 분의 반가사유상만이 놓여 있었고,
공간은 좁았지만 동굴처럼 어둡고 아늑했다.
반가사유상 앞 벤치에 앉아
속으로, 혹은 아주 작게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미술부 ○○ 선생님이 말이에요…”
말을 늘어놓다 보면
어느 순간 불퉁했던 기분이
조금씩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미소 짓고 있는 1,500살짜리 사수 앞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를 치는 기분이랄까.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특별전 설명을 위해
두꺼운 책을 건네주던 고고역사부 선생님.
일부러 전화를 걸어 한자 오탈자를 짚어주던 연구관님.
손때 묻은 한자사전을 선뜻 내어주던 교정 선생님.
춘천에서 손편지와 잣 한 병을 보내오던 할아버지 독자님.
박물관의 사물 이야기를 책으로 묶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소나기를 피해
잠시 햇볕 속으로 밀려 나올 수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평범했지만
박물관에 모인 사물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물을 만든 것 또한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