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와 돌조각
선사고대관은 나의 박물관 동선에서
3층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와
사무동으로 돌아오는 코스의 끝에 놓여 있었다.
순서로는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들어설 때가 많았다.
1층은 항상 북적이는데 막상 선사고대관에 들어오면
한적할 때가 많았다.
손에 활동지를 들고 다니는 학생들은
빈칸의 답을 채우기에 바쁘다.
직원증을 달고 있는 나를 보면
종종 학생들은 다가와 활동지 빈칸의 답을 물어왔다.
나는 답 대신 질문만 늘어놓았다.
“3층 불교조각실은 가봤니?”
“이렇게 날씨 좋은데, 석조물공원 나가봤어?”
특별히 얻어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학생들은
재빨리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작은 해프닝을 지나
선사고대관에 들어서면 시간이 혼란스럽다.
이곳은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이 놓여있었다.
미래의 내가 가장 순수한 사물에 닿는 기분이다.
자연의 원형 앞에서 깨고, 떼고, 갈며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자취만이 남아 있다.
커다란 빗살무늬 토기와
손에 쥐기 좋게 다듬어진 돌조각 앞에서
그 고단함과 단순함 사이에 놓인 삶이 보였다.
살기 위해 먹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매일이 생사 고락인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묵묵히 아름다운 형태를 빗어내고,
무늬를 새겼다.
선사고대관은 문명의 출발점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얼마나 오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왔는지를
증명하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국보와 보물의 구분도,
이름과 번호의 질서도
잠시 힘을 잃는다.
가장 원형의 사물들 앞에서 누구나 공평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사무동, 나의 자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