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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춘열 Apr 04. 2019

축석고개만 넘으면

남북으로 길게 뻗은 포천으로 진입하는 주요 관문은 43번 국도다. 의정부를 지나 서울로 가는 주요 도로인 43번 국도의 경계엔 축석고개가 있다. 군 검문소가 있고, 몇 년 전만 해도 커다란 대전차 방호벽이 설치되어 있고, 그만큼 커다란 광고물이 붙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축석고개의 방호벽을 포천의 관문처럼 느끼고 있었다.     


몇 년 전, 지금은 퇴임한 부서장과 함께 중앙지 기자와 의정부에서 식사했던 적이 있었다. 연차가 얼마 안 되어 경기 북부지역을 담당하게 된 기자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출신 학교를 알게 되어 함께 아는 지인 얘기를 하며 편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부서장은 스무 살도 더 차이 나는 기자에게 깍듯한 존댓말을 써가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지역 현안에 그다지 관심 없는 기자와 한껏 긴장한 부서장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대화 주제를 잡으려 애썼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2008년 축석고개 대전차 방호벽, 2009년에 철거되고 지금은 도로도 넓어졌다.


“축석고개만 넘으면 이리 편한걸.”    


식사를 마치고 포천으로 들어오는 길, 축석고개를 지났다. 갑자기 부서장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달리 뭐라 물을 말도 없어 묵묵히 운전만 했다. 잠시 후 부서장은 머쓱했는지 묻지도 않은 소리를 술술 풀어냈다.     


지역에서 시청 과장이면 읍면동장이고, 단체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을 다 아니 크게 불편한 게 없단다. 특히 서로 몇 안 되는 초중고등학교의 선후배이고, 과수원집 첫째에, 종묘상 집 둘째로 불리니 모두가 형이고 동생이다. 그러다 보니 절차나 과정보다 지연으로 대부분의 관계와 문제가 해결되는데, 이것이 축석만 벗어나면 그렇지 못하니 영 불편해 나가면 들어오고 싶단다. 그도 젊을 때는 포천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지만, 몇 번의 기회를 놓쳤고 밖에서 잘 나가는 동창이나 친구들을 보면 조금 부럽긴 하지만 살다 보니 지금은 포천이 더없이 편하단다.     


나도 포천에 온 지 어느덧 십수 년이 넘었다. 채용 특성상 한 업무만 맡고 있다 보니, 업무 관련해서는 빠삭하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는가. 이상한 주문은 있어도, 업무와 관련해 가슴 아픈 지적은 없다. 특별한 문제가 아니면 그간 알게 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쉬이 해결한다. 이젠 나도 축석고개 안이 편하다. 어젯밤 아이 책상에 놓여있던 ≪그림자를 믿지 마≫(데이비드 허친스, 바다어린이, 2008)의 문장이 떠오른다. 나도 동굴 밖을 벗어나는 법을 잊은 건 아닐까?


자네와 같은 호기심 많은 사람도 동굴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를 기억하게. 하물며 동굴에서 사는 데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기란 얼마나 더 어렵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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