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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 Jun 24. 2020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2

그리고 이민에 성공했다.




#2 입국준비, 그리고 입학 준비.


말도 안 되게 비싼 국제학교 등록금, 게다가 두 아들. 생계를 홀로 책임지시던 어머니한테는 항상 큰 부담이었다. 조금은 일찍 철들었던 걸까, University가 아닌 College라고 불리는 2년제 전문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유학생에게 캐나다 대학교 등록금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평균적으로 한 학기에 600~800만 원이나 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9월 학기가 아닌 1월 학기에 입학하기로 결정하고 6개월 동안 돈 모으는데 전념하기로 했다. 갖은 알바를 밤낮으로 하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첫 학기 등록금을 낼 수 있었고, 기본적인 생활용품과 비행기표를 사고 나니 내손엔 300만 원이 남았다.


13년 여름, 태국 관광객 가이드 겸 사진사 시절


입학 준비를 시작했다. 국제학교를 다녔던 덕분인 걸까, College의 최소 입학조건인 토플 80점은 넘길 수 있었다. 못 넘었더라도, 캐나다에 수많은 어학원을 통해 패스웨이 프로그램을 수강하면 됐을 것이고, 캐나다의 College들은 자체로 진행하는 ESL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를 통해 입학할 수도 있었다. 의지만 있다면 길도 있었다.


입학 허가서도 받았다. 유학원을 통해 15만 원 내고 학생비자도 받았다. 모든 것이 준비됐다. 가족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내 마음만 빼고.


한국에서 6개월 살아보니 한국은 생각보다 살기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를 무기로 알바를 하니 돈도 많이 벌었다. 이방인으로 살았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고 이 평범한 삶에 조금씩 중독되고 있었다. 잠시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려 준비도 했었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1순위, 가족을 두고 가야 하는 마음이 매일 내 두 발을 무겁게 했다. 출국 1달 전, 1주일 전, 하루 전 몇 번이고 고민했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


13년 여름, 엄마와 함께



정신 차렸다. 내가 원했던 삶, 그리고 날 두근거리게 했던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정신을 바로잡았다. 그 도전에 기필코 성공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거라 다짐했다. 나에게 그 정도 보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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