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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 Jun 24. 2020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그리고 이민에 성공했다


#1 생존하기 위한 언어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만 14세 중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가족을 따라 태국으로 이민 갔고, 국제학교에 입학해서 편안한 환경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당연했을 때, 다소 스파르타 교육방식을 추구했던 어머니는 형과 나를 태국-라오스 시골국경에 위치한 태국인 학교로 입학시켰다. 그것도 기숙사로.


처음 정착한 태국의 우본 라차타니 마을



하루아침에 눈뜨고 보니 180도 달라진 환경, 영어도 태국말도 못하던 14살의 나 그리고 17살의 형은 말그대로 생존을 위해 언어를 배워야했고 그 과정은 어린 두 학생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1년동안 현지 학교생활을 하며 만난 태국인 학생들에게는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였고 때론 질투의 대상이였다. 살기위한 발버둥이 너무 힘들었던걸까, 형과 나는 두차례나 학교를 옮기게 되었고 결국 태국의 수도 방콕으로 올라와 평범한 한국인 아이들처럼 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태국어라는 든든한 무기를 등에 지고.




이제 국제학교에 입학했으니 한결 편해졌을까? 터무니 없는소리. 태국학교에서 죽기살기로 배운언어는 태국어 였기때문에 영어를 필요로하는 국제학교는 또 다른 오르막 길이였다. 남들만큼만 할수 있었던 우리 영어는 국제학교에서 모든 수업과정을 영어로 듣기에는 터무니 없는 수준이였다. 결국 형과 나는 1년씩 유급을 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심지어 ESL반, 즉 영어 집중교육 반에 들어간다.


언어는 나의 운명이였던걸까, 또래에 뒤쳐졌단 생각에 이악물고 영어공부를 하고 적응해나갔다.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고 내 인생의 짝꿍도 만났다. 돌이켜보면 재밌었던 국제학교에서의 4년이 지나고, 졸업반이 되었다. 



BCIS 국제학교. 상당히 작은 규모다.




졸업반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당연히 대학진학이다. 국제학교의 특성상 졸업반 학생들의 진로는 크게 2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본인의 나라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을 하거나, 또 하나는 미국에 도전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일확천금, 자수성가를 목표로 하진 않았지만 그저 열씸히 배운 영어가 아깝다는 생각에 후자를 선택했다. 아 참, 그 당시에는 헬조선 이라는 신조어가 생기던 때였고 한국에서의 삶은 나에겐 너무 경쟁적이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도 한몫 했다.


다들 대학진학을 걱정할때 나는 조금 더 멀리 봤었던것 같다. 나는 항상 대학졸업후, 취직후, 심지어는 은퇴후까지 생각하고 있었고 9.11사태 이후 이민의 벽이 높아진 미국은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다른 영어권 나라에 눈을 두고있던중, 이민의 벽이 낮고 무엇보다 살기좋은 나라의 대명사인 캐나다를 알게되었고 마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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