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그냥 요리가 아니다

김장하는 날 생각난 빨간 손

by 장서나

딸과 엄마 사이에는 텔레파시라도 있는 걸까요?

어제 오후에 갑자기 엄마에게 연락하고 싶더라고요.


― 엄마, 김장 언제야?
― 오늘 밤에 배추 절여놨다가 내일 그냥 조금만 할 거야.
― 엄마 혼자 하는 거잖아.
― 아유. 그냥 조금만 하는데, 뭐.
― 내가 내일 오전에 갈게.


◎ 오늘의 플레이리스트 ♬

이 음악을 들으며 제 글을 읽어주셔도 좋겠습니다.

지금, 이 음악을 들으며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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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김장하려 했던 엄마의 계획은 그렇게 무산됐습니다.

김장하기 딱 하루 전날, 갑자기 전화해서 언제 김장하냐고 물어보는 딸.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옆에서 보조 역할밖에 못 하는 실력이지만,

그래도 그 덕에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맛난 김장김치와 엄마표 선짓국에 점심도 든든히 먹고 왔답니다.

엄마표 김치와 선짓국



오늘은 엄마의 밥상이 불러온 기억 하나를 꺼내보려 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더 생각나는 겨울날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꾸역꾸역 일상을 살아내는 힘』일곱 번째 글,

< 요리는 그냥 요리가 아니다 > 시작합니다.^^



우리 가족은 통통하다.

단 한 사람, 우리 아빠만 빼고.

아빠는 전성기(?) 시절, 밥을 엄청나게 드셨다고 한다. 식탁 위에 반찬이 수두룩해도, 먹고 싶은 김치가 없으면 꼭 찾아 꺼내 드신다. 정말 적극적으로 식사에 임하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살은 찌지 않았다. 아빠 배가 나온 걸 평생 본 적이 없으니, 실로 부러울 따름이다. 엄마는 조금 억울하실지도 모르겠다. 평생 정성껏 먹였는데, 성과(?)가 안 보이니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아빠가 그렇게 잘 얻어먹고 살아온 걸 전혀 모를 거다.

그 대신 엄마 밥을 고스란히 흡수한 사람이 있다. 내 동생. 키가 무려 188cm. 덕분에 살이 쪘어도 기럭지가 같이 커져서 다행이다. 아직도 엄마 옆에 붙어서 엄마 밥을 아침저녁으로 먹는다(아, 부럽다). 동생의 키 성장에 엄마 밥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창 시절, 바쁜 아침에도 고기쌈을 먹으며 눈을 떴고, 먹고 싶다 하면 금세 뚝딱 대령이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이 풍성하게 먹으며 자랐다.

문득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다.

어린 시절, 차가운 겨울 저녁이었다. 퇴근길에 장을 보고 오신 엄마 손에는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엄마 손은 새빨개졌는데, 비닐봉지를 든 부분은 손가락 마디마다 하얀 금들이 선명했다. 추운 날씨에 손이 굳어 펴지지 않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우리는 어쩌면 엄마의 희생으로, 엄마의 젊음으로 큰 게 아닐까. 엄마도 가족끼리 외식을 하며 하루쯤 쉬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조차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냈을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함께 나눠 먹을 가족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묵묵히 그리고 기꺼이 그 무게를 지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외식을 거의 안 하신다. “같은 값이면 집에서 훨씬 푸짐하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라며, 여전히 가족 밥상을 손수 준비하신다. 이제는 식구가 늘어 열한 명 온 가족이 모이면 먹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귀여운 손주들이 보고 싶다고 오라고 하시고선, 자꾸 부엌에만 계신다. 밥, 간식, 간식, 밥, 간식, 간식. 오물오물 다섯 손주 입을 보며 참 행복해하신다. 나도 이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우리 엄마 사랑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엄마의 평생을 바친 사랑과 희생은 감히 따라갈 자신도 없다.



세월이 흘러 엄마들의 희생은 모양이 달라졌다. 예전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오셨지만, 이제는 손가락 몇 번 두드리면 마트에서 집 앞으로 그날 바로 배송해 준다. 가성비 좋고 편리한 밀키트 덕분에 식사 준비 시간이 확 줄었다. 대신 아이의 학원 픽업을 가고, 주말에 갈 체험학습을 찾고, 달라진 교육 환경에 맞춰 고민하는 일들이 새로 늘었다. 결국 엄마가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 머지않을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가족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올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엄마처럼 부엌에서 분주히 음식을 준비할까, 아니면 집 근처 맛집을 찾아 예약해 놓을까.

아마도 나도 엄마와 같은 모습일 것 같다. 눈은 식구들을 좇고, 손으론 식사를 준비하고, 마음으로는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어쩌면 한 번씩은 (너무 감사해서) 부엌 구석에서 몰래 눈물을 훔칠지도 모르겠다. 상상만 해도 코끝이 찡,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찔끔 고인다. 다이어트 중인 데 왜 이리 맛있는 걸 많이 해놨냐며 투정 부리는 딸내미도 있겠지.



나는 그저 기쁘게 식탁을 채울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새로운 식구들을 살찌울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사실 저희 엄마는 정말 요리에 진심입니다.


2018년 8월부터 지금까지

인스타그램에 이천 개가 넘는 게시물을 올릴 정도로,

매일 엄청난 양의 다양한 요리를 하신답니다.


이천 개의 게시물,

그 안에는 엄마의 사랑이, 정성이,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엄마처럼 못할 것 같아요.

오늘도 선짓국 먹으면서 엄마가 레시피 이야기해 주시는데,

"엄마, 나는 못할 것 같아…."라고 하게 되더라고요.

제대로 하려면, 보통 정성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늘 든답니다.



엄마와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제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해야겠습니다. ^^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엄마의 이천 개 요리 게시물은 여기서 보실 수 있답니다.

https://www.instagram.com/tshoney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