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놀고 있나요

성과 없이 노는 시간이 필요해

by 장서나

만들기, 그림 그리기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실, 저희 아이들이 부럽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학원에서 만들고 그리는 아이들을 보면 말이죠.

저도 집에서 조금씩 시간을 내면 되겠죠. 그런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 오늘의 플레이리스트 ♬

이 음악을 들으며 제 글을 읽어주셔도 좋겠습니다.

지금, 이 음악을 들으며 쓰고 있어요.

겨울의 선율 | 시간의 서재⏳핑크빛 겨울 감성 캐롤 피아노 | Cozy Christmas Piano & Glockenspiel @timeforseniors



얼마 전, 좋은 기회로 '도마 만들기'와 '아크릴화 그리기'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하나는 아이들 학교 학부모 평생교육 연수로,

또 하나는 지역 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하는 학부모 힐링 연수로 신청하게 되었죠.


아이들 때문에 여유가 없지만, 아이들 덕분에 이런 수업을 들을 기회가 생겼네요.


『꾸역꾸역 일상을 살아내는 힘』여덟 번째 글,

< 잘 놀고 있나요 > 시작합니다.^^



톡톡!

「난 도마 만들기 떨어졌나 보다... 연락이 없었네. ㅋ」

「헉 진짜? 나는 연락왔엉. 아쉽당 ㅠ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도마 만들기 수업 참여에 선정됐다. 추석 마지막 날 비행기를 기다리며 늦게 신청했던 아크릴화 그리기 수업도 대기였지만, 다행히 수강 가능했다.

연이어 만들기와 그리기 수업을 듣게 된다니, 이런 행운이 있나 싶었다.




도마 만들기 수업은 아이들 학교 빈 교실에서 진행되었다. 공방을 운영 중인 말쑥한 젊은 남자 선생님은 겉모습과 달리 노련하게 수업을 진행했다. 친구가 정말 듣고 싶어 했던 수업이라, 왠지 더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들었다.

오늘 만드는 도마는 '레인트리'라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흔히 쓰이는 편백은 습기에 약해서 실제로는 도마로 쓰기 좋은 나무가 아니고, 캄포 도마도 나무에 있는 특정 성분이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어 사실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도마에 상처가 생길 경우, 사포로 잘 정리한 뒤 카놀라유, 포도씨유, 생들기름 등으로 얇게 발라준 후 바로 닦아줘야 한다고. 1개월에 한두 번 소독할 때는, 그냥 도마를 들고 식초를 앞면 뒷면에 부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설명까지 덧붙이셨다.

'역시, 배워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

지금까지 나무 도마를 계속 써왔는데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도마 만들기 수업이라고 하면 나무 목재에서부터 시작해서, 모양을 만들고 대패질, 사포질까지 이어지는 작업을 주로 예상하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수업이라, 선생님이 사포질까지 거의 다 마친 도마를 준비해 주셨다. 목공은 처음인데, 오히려 좋았다. 거친 사포로 10분, 부드러운 사포로 10분, 그렇게 힘들지 않고 즐거울 정도로 사포질을 했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각인! 달궈진 인두로 조심조심 천천히 글을 쓰는 동안, 나무 타는 냄새가 구수하게 코를 간질였다. 이번 작품은 마침 다음 주 엄마 생신 선물로 딱 좋았다.


Mom's Table, God's Grace †


마무리로 오일까지 발라주니, 세상에 하나뿐인 도마가 완성됐다.


인생 첫 나무 각인. 나무를 태워 글씨를 새기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다음은 아크릴화 수업.

아기자기하게 잘 정리된 공방.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 된다. 나의 로망, 공방.


'아크릴화 그리기 수업에선 뭘 그리게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공방에 들어섰다. 자유주제로 그린다면 뭘 그릴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의 주제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바로 <나만의 트리 그리기>!


수업 시작 시간이 되자, 친구처럼 친근한 선생님은 배경 색부터 정하라고 하셨다. 원하는 색을 이야기하면 바로 물감부터 짜주시고, 특별한 설명 없이 바로 시작이었다. '어떤 색 배경을 칠할까?' 잠깐 고민 후, 바로 고른 색 '핑크'!


열 명의 엄마는 제각각 서로 다른 색을 골랐다. 푸른색, 보라색, 어두운색, 밝은색. 선생님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한 명씩 봐주시는 소리만 들리고, 모두 사뭇 진지하게 배경 색부터 칠해 나갔다.


트리를 표현하는 단계에서 첫 번째 난관. 보기에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그리다 보니 나무가 자연스럽지가 않고, 초라하고 어색했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나무를 '나무 답게' 만들고, 다음으로 모델링 페이스트를 이용해 나무 아래쪽 눈을 표현해 주었다. 나무 위에도 눈이 내려 쌓인 것처럼 조금씩 얹어줬다. 거친 질감의 꾸덕꾸덕한 페이스트를 나이프로 덜어내어 바르는 작업은 붓질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사각사각 여기저기서 캔버스를 나이프로 긁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어려웠던 나무 그리기. 역시 해보면 다르다. 보기엔 쉬워 보였는데. 어릴 적 TV에서 보던 밥 아저씨가 생각남.


대망의 마지막 순서, 눈 뿌리기.

물감이 묻은 붓을 다른 붓으로 톡톡 쳐주니, 눈이 내린다.

처음에는 다들 자신이 없더니, 하나씩 단계가 더해질수록 작품에 욕심이 난다. 반짝이도 뿌리고, 나무 위에 별도 올렸다. 눈 뿌리기 단계가 마지막 단계라 다들 더 조심스러웠다. 밤하늘의 별처럼 은은하게 표현하느라 톡톡 붓을 두드리는가 하면, 너무 크게 떨어진 물감을 급하게 물티슈로 조심히 닦기도 했다. 나는 왠지 함박눈이 많이 내리는 풍경을 표현하고 싶어서, 아주 신나게 붓을 쳐댔다. 아이들이 전에 밤하늘의 별을 표현한다며 칫솔에 묻힌 하얀 물감을 손가락을 털어댈 때, 물감이 여기저기 날리는 것만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눈을 내리게 하는 단계가 제일 많이 신나고 재밌는 거였다.


그렇게 다들 처음 시작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상기된 얼굴로 '나만의 트리'를 완성했다. 열 개의 나무를 모아놓고 보니, 하나도 같은 나무가 없었다. 모양도 크기도 색도 느낌도, 전부 다 다른 나무들.

"똑같은 트리가 하나도 없네요. 엄마들도 다 이렇게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인데."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왠지 모를 동료애가 싹트는 시간이었다.




두 수업 덕분에, 잠시 잊고 지냈던 기쁨을 찾았다.


'내년에는 캘리그라피도, 그림 그리기도 다시 시작해야지!'


혼자서라도 학원에 다니는 것처럼, 일정을 잡아서 규칙적으로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위 '성과를 내는 일'에 계속 밀릴 게 뻔하니 말이다. 책 읽는 것도 좋고, 글 쓰기도 정말 좋지만, 노는 것도 좋아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이득이 없어도, 시간을 내어 '잘' 놀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놀고 싶은 방식'을 되찾았다.



작은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나에게도 선물이 필요하다.


캘리그라피를 위한 먹물, 종이,

그림그리기를 위한 캔버스, 물감.

다 있다.

내 마음만 먹으면 된다.


성과가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조금의 여유와 잠깐의 멈춤으로

내 마음에 작은 틈을 만들어 주는 것.


잘 놀 마음.

바로 그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다.




올해가 벌써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나이든' 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도전과 변화가 있었던 해였습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연말이 다가오니

'일 년 동안 이룬 게 뭘까?

올해를 잘 마무리하려면 지금 뭘 더 신경 써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만들기와 그리기라는

노는 시간을 가져보니

참 좋았어요.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런데도 일주일 스케줄에서

이 시간을

바로 넣을 수가 없었어요.

이미 12월까지 하려고 마음먹은 일들이

다 계획되어 있거든요.


여유를 갖기가 왜 이리 어려운 걸까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뒹굴하는 것 말고

노는 것도

마치 일처럼, 숙제처럼 계획을 짜야 놀 수 있다니

저는 이제 어른이 너무 되어버린 걸까요.


그래서 일단은

내년으로 놀 계획을 넘겨버리고 말았습니다.

2025년은 도전, 시도, 꾸준함이 키워드였다면,

2026년에는 여기에 '잘 놀기'가 추가될 것 같습니다.

매달 목표에 노는 항목을 구체적으로 추가해야 하겠죠.




여러분은 어떤가요?

잘 놀고 있나요?


성과를 신경 쓰지 않고

맘 편히 노는 시간이 있으시다면,

참 부럽습니다.


없으시다면,

반갑습니다.


같이

잘 놀아봐요, 우리! ^^



dushawn-jovic-5DLRReNddWw-unsplash.jpg


이전 08화요리는 그냥 요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