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마일리지: 병 속에 다 넣지 못한 돌멩이들

by 장서나

오후의 글쓰기는 위험하다.

시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 오후, 그날따라 글이 잘 써졌다. 조용한 집안에 들리는 소리는 오직 자판 두드리는 소리뿐.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자들을 손가락이 쫓아가기에 바빴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 둘째 아이의 전화였다.

"엄마, 나 학원 끝났어. 놀다가 들어갈게!"

"어…응…."

노트북 화면을 응시한 채 반자동으로 대답함과 동시에 내 시선이 노트북 한쪽 귀퉁이 작은 시계에 머물렀다.

'오후 16:55'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막내 유치원 버스 도착하기 5분 전.

나라는 개인의 우주를 황급히 닫고

'엄마'라는 우주를 강제 소환하는 순간이었다.



5분 단위로 쪼개진 어른의 시간


어떤 이는 아이 픽업 시간 5분 전, 10분 전, 15분 전, 5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 놓았다 했다. 그 말은 곧, 늘 핸드폰을 곁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때론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인한다. 어떤 5분은 빨래를 돌리고,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간단한 설거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길고, 어떤 5분은 정신없이 아이만 챙겼는데 그냥 사라진다. 분명히 여유롭게 준비한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스로 시간을 맞추기도 한다. 일은 항상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호프스태터의 법칙'을 고려한다고 해도, 시간의 장난에 속은 것 같은 찝찝함은 늘 남는다.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느긋함을 느껴본 게 언제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잠시뿐. 또다시 시간에 쫓기듯 하루가 흘러간다.


시간이 나를 쫓는 걸까,

아니면 아무도 쫓지 않는데 나 혼자 바쁜 걸까.



잃어버린 '긴 하루'의 감각


문득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방학 때면 시계를 볼 일이 없었다.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고, 눈이 떠질 때까지 늦잠을 잤다. 자다가 눈을 떴을 때 벽시계가 가리키는 6시가 새벽 6시인지 저녁 6시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때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렀고, 하루는 길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은 다르다. 내 시간은 분명 내 것이지만, 온전히 나 혼자서만 사용할 수 없다. 타인의 요구와 사회적 약속들로 촘촘히 조각나 있다. 어른에게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른이라면 당연히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조각난 시간'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며, 그 시간을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문제는 효율성에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올리버 버크만은 4000주』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효율성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모든 것을 할 시간이 있다고 분명하게 믿을 수록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이나 다른 사회적 활동을 달력에 적어 넣을 때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기 위해 기존이 다른 항목을 지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희생해야 한다.


우리는 마치 하루를 24시간 이상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시간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하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지금보다 더 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 한정된 시간 내에서 더 많은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하다. 어떤 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시간에 할 수 있었던 다른 일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시간의 양보다 중요한 것


그는 생산성에 관해 유명한 '병 속의 돌멩이'를 '짜증 나는 비유'라고 한다. 병 속에 모래를 먼저 넣고 나중에 돌멩이를 넣으면 다 넣을 수 없지만, 돌멩이를 먼저 넣고 모래를 넣으면 다 넣을 수 있다는, 인생의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의 우선순위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이 이야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시간 관리에 실패하는 이유는 돌과 모래의 우선순위를 구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유리병에 넣어야 할 큰 돌들이 애초에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게도 큰 돌이 너무 많다. 그 돌 중 일부는 다른 이들이 만들어줬고, 또 일부는 내가 만들었다. 다른 이들이 만든 돌로만 가득한 병은 억울하다는 듯, 나도 돌을 만들 수 있다고 외치듯, 그럴듯해 보이는 돌을 끝도 없이 만들고 있다.

그 덕분에 나는 자랑할 만한 빛나는 돌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할 일이 많은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내가 지금은 다 해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언젠가)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으니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하지만 병 속에 넣지 못하는 돌이 많아질수록, 처리해야 할 일들이 계속 남아있다는 현실에 조급함만 선명해질 뿐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돌을 만들고 있나. 이미 지금 가진 돌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올리버 버크만 역시 주어진 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해야 할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양으로 나누어 미리 정해진 시간 내에서만 하라고 한다. 할 일 목록을 만들되 해야 하는 모든 것을 적은 '열린' 목록을 만들고, 그 중 최대 10개까지만 '닫힌' 목록으로 만들어서 한 가지 일을 끝낼 때까지 새로운 일을 추가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주어진 시간에 한계가 있고 그 시간을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이 너무 많을 때, 우리는 습관처럼 말하곤 한다.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어."

하지만 몸이 두 개가 되면 일을 두 배로 할 수 있을까? 삶이 두 배로 풍요로워질까? 그렇게 되면 일이 이전의 두 배가 아니라 그 이상 늘어날지도 모른다. 내 몸은 하나고,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으며,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다.



짧지만 오래 남는 시간


우리는 흔히 나중에 쓰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을 마일리지라 부르지만, 시간은 저축할 수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몰입을 통해서만 적립될 뿐이다. 내게 주어진 에너지와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병 속에 넣지 못한 돌멩이에 대한 미련이 사라진다. 그제야 내가 몰입한 짧은 시간이 진정한 시간 마일리지로 쌓인다.


시간 마일리지는 효율적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했을 때 쌓이는 것이 아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라는 우주 속에 빠져들 때, 누군가와 보내는 시간 동안 온전히 집중할 때와 같은 밀도 높은 순간들이 모여 쌓이는 것이다. '언젠가 마침내' 미래의 어느 날에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누릴 최고의 삶을 위한 것이다.


결국 시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물리적인 양이 아니다.

몰입의 밀도에 있다.

그 시간 속에 얼마나 깊이 머물렀는가이다.


우리는 시계를 보며 책임을 다하고,

가끔은 시계를 잊은 채

한 세계에 깊이 잠겨야 한다.


그때 비로소

짧은 시간도

오래 남는다.




[철학자의 노트]

육체로는 쾌락의 한계가 무한하며, 무한한 쾌락을 얻으려면 무한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지성이 육체의 목적과 한계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영원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해 완전한 삶을 얻게 해주면, 무한한 시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지성은 쾌락을 피하지도 않고, 삶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도 마치 최고의 삶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해 아쉽다는 듯이 떠나지도 않는다.

—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 쾌락』, 현대지성, 2022, <주요 가르침들> 중에서

우리는 왜 늘 시간이 부족하다며 쫓기듯 살까요? 에피쿠로스는 그 이유가 우리 육체(본능)의 속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육체는 본능적으로 즐거움과 성취의 한계를 무한한 것으로 착각하며, 그것을 다 채우기 위해서는 영원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끝도 없이 만들고 있는 돌멩이는 이 무한한 갈망의 증거입니다. 에피쿠로스는 '지성'을 통해 이 환상을 깨뜨려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미련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지성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미 충분하다."


병 속에 넣지 못한 돌에 미련을 두지 않고,

그럴듯해 보이는 돌을 의미 없이 만들지 않을 때,

에피쿠로스가 말한

'한정된 시간 안에서의 완전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전 06화가족 마일리지: 나는 이 삶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