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겨우 재우고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향해 가고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조용히 일할 시간이 없다. 챙겨 나온 노트북을 일단 식탁 위에 팽개치듯 내려놓는다. 노트북을 열어 뭐든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수건과 옷이 거슬린다. 아니, 사실은 조용히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있는 신랑의 뒷모습이 더 신경 쓰인다.
'이 정도는 해야지.'
괜히 눈치를 보며 일단 빨래를 재빠르게 개기 시작한다. 수건을 접고 아이의 작은 내복을 쌓으며 문득 억울한 생각이 올라온다.
'나 신데렐라인가? 글 쓰고 싶은데, 왜 그전에 항상 밀린 집안일부터 해야 하는 걸까.'
마음속에서 투덜거림이 피어오를 때쯤, 또 다른 생각이 그 자리를 밀고 들어온다.
'아니, 나는 신데렐라가 아니지.
신데렐라는 타의에 의해 억지로 집안일을 한 거고,
나는 이 집의 주인이자 엄마잖아.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엄마가 되어 엄마를 생각하다
독립하기 전에는 늘 엄마가 해주시던 일이다. 내가 자유롭게 젊음을 누리고 있을 때, 엄마는 수십 년을 의연히 하시던 일이다. 한 번도 생색내지 않았던 그 무수한 동작들. 엄마의 삶을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신데렐라 어쩌고 하는 신세 한탄조차 사치였을, 그 묵묵하고도 긴 세월을 말이다.
엄마는 한 번도 우리 남매 때문에 힘들다고 한 적이 없다. 항상 힘들어 보이셨지만, 한숨조차 내뱉지 않으시던 분이셨다. 엄마에게는 언제나 우리 남매가 우선이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가 더 경험할 수 있게 노력하셨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사랑을 넘치게 표현하셨다.
엄마 세대 때는 다들 그러고 살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다들 그랬다'라고 해서 그 삶이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연함이 아니라, 위대한 인내와 헌신이었다. 엄마가 쌓은 가족 마일리지는 '우리'라는 가족 계좌에 차곡차곡 쌓였다.
우리는 왜 더 흔들리는가
그런데 그런 헌신을 받고 자란 우리 세대는, 엄마 세대와는 다른 모습의 엄마가 되었다. 헌신의 크기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에 주목해 보려 한다.
우리 세대는 헌신과 희생을 더 괴롭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자녀에게도 그 힘듦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SNS에는 독박 육아의 고통을 호소하는 글들이 넘쳐나고,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가 깊은 공감을 얻는다.
무엇이 다른 걸까.
무엇이 더 나은 걸까.
엄마 세대의 헌신이 '무조건적인 인내'였다면, 우리 세대의 헌신은 '자아와의 끊임없는 충돌'이다. 우리는 '나'로 살고 싶은 욕망과 '부모'로 살아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매일 전쟁을 치른다. 그래서 더 괴롭다. '지워지는 나'를 묵인하는 것이 고통스럽다.
엄마 세대의 헌신이 '묵묵한 감당'이었다면, 우리 세대의 헌신은 '자각된 감당'이다. 우리는 안다. 내가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 무엇을 미루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를.
그래서 더 흔들린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꿋꿋이 가족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있다.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가족 마일리지는 언제 인출되는가
가족 마일리지는 적립하고 바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적립되는 장기 보관 자산이다. 내가 오늘 갠 빨래, 내가 오늘 아이의 투정을 받아내며 삼킨 한숨,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아이와 보낸 시간…. 이 모든 것은 당장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마일리지는 자녀의 기억 어딘가에, 가족의 마음 깊은 곳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 내면에 보관된다. '신뢰'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가족의 삶을 데워주고, '행복'과 '기쁨'이라는 이름으로 색색깔 폭죽을 터뜨려 줄 든든한 자산이 된다.
비밀은 여기에 있다. 장기 보관된 가족 마일리지는 언제 인출될까?
가족 마일리지는 언젠가 가족이 예기치 못한 폭풍우를 만났을 때 비로소 인출된다. 내가 쌓은 이 마일리지는 훗날 내 아이들이 세상을 버텨낼 힘이 될 것이며, 내 배우자가 좌절했을 때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부모님이 적립해 두신 마일리지를 수없이 인출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나도 가족 마일리지를 적립해가고 있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생의 가장 확실한 예치금이 될 것이다. 그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 이곳의 나
'빨래'와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주인공 에블린은 남편과 함께 빨래방을 운영하며 산더미 같은 일에 치여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러다 수많은 멀티버스(multiverse, 다른 차원의 우주) 속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지금 살고 있는 우주에서는 이루지 못한 목표와 버린 꿈이 너무 많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뛰어난 쿵후 무술가이기도 하고, 사랑받는 화려한 배우이기도 하며, 인기 많은 가수이기도 하다. 그녀는 선택할 수 있었다. 다른 우주 속의 에블린으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결국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지금의 삶으로 돌아온다. 가족이 있는 삶으로.
뭐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거기로 가지 않은 이유는 언제까지나 가족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멀티버스 세상의 모든 나 중에서 '지금 이곳의 나'만을 선택한 것이다. 가만히 상상해 본다. 내가 지금의 나를 선택했다고. 수만 개의 다중우주 속에 의사, 배우, 화가, 여행가, 선생님, 가수인 내가 있는데, 세 아이 엄마인 지금의 나를 선택한 거라고. 나는 지금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나' 대신 '지금의 나'를 고른 거라고.
나는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여 여기 있는 것이다.
다시, 일상이라는 우주를 선택하며
건조기 완료 알람 소리가 들린다. 잠시 멈춰, 따뜻하게 마른 빨래를 소파 위로 내려놓는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은 지 오래고, 소파엔 미처 정리 못 한 빨래들이 널려 있다. 조용한 거실, 시계 초침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이 고요한 시간이 아쉬워, 애써 노트북 위에 시선을 두고 생각의 조각들을 기워간다.
나는 여전히 나를 잃고 싶지 않고, 새롭게 찾은 나를 매일 돌보고 챙겨주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이 가족을 잃고 싶지도 않다. 집은 항상 정리되지 않은 상태일 것이고, 식탁 옆 작은 책장엔 늘 새로운 책들이 줄 서 있을 것이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매일 감수하는 수고로움이 '장애물'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유효할 가족 마일리지의 적립 과정이라는 것을.
희생은 희생이라 부르며 인정해 주되,
그 안에 담긴 사랑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쌓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마일리지일지도 모른다.
[철학자의 노트]
사랑의 탁월성, 사회성의 탁월성, '타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타자들에 대한 책임의 탁월성은 나의 것인,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나의 불안이 아니다. 초월은 더 이상 실패한 타자성이 아니다. 초월은 더는 단순한 지향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책임인 사회성 속에서 정신의 고유의 탁월성을, 정확하게는 완전성 또는 선을 갖게 될 것이다. 모든 앎과 모든 내재성에 대립하는 이 사회성은 세계의 순수한 일부인 타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타자 그 자체와의 관계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초월과 인식 가능성』, 문예출판사, 2025, <무한의 로고스> 중에서
우리는 종종 나를 위한 시간을 뺏길 때 불안을 느낍니다. 내가 사라지는 것 같고, 내 꿈이 뒤처지는 것 같아 초조해지기도 하죠. 하지만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우리가 느끼는 그 '자신에 대한 불안'보다 더 높은 차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타자에 대한 책임'입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진정한 인간의 위대함은 나 자신의 안위나 성공을 걱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필요한 타자(가족)에게 나의 안락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회성' 속에서 정신은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우리가 느끼는 복잡한 마음은 결코 '자기 상실'의 증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타자의 삶을 돌보는 '정신의 고유한 탁월성'을 실천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멈춘 것 같아 불안할지라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세상 그 어떤 성취보다 탁월한
'선(善)'이 깃든
가족 마일리지를 쌓는 중입니다.